2008년 철쭉이 예쁘게 핀 봄날, 전주에서 소양 망표마을로 들어온 이성용 어르신 부부가 산양을 돌보고 있다. 산수유 꽃 따라 산책하듯 동네 한 바퀴 봄날은 흐린 뒤 맑음 밤새 내린 비가 오전까지 이어졌다 . 용봉산 자락에 깃든 조그만 산사도 봄비에 젖었다 .
대웅전 마루에 앉아 창호를 넘어 오는 예불소리를 들었다 . 빗소리 풍경소리 독경소리가 산을 오르며 들끓었던 마음을 차분히 달랬다 . 소양성당과 주사랑교회를 지나 생각 없이 가로질러 온 길 . 성불사 이정표를 따라 차로 오른 산길은 충분히 좁고 급했다 .
숨을 참고 마음 졸이며 올라 마침내 안전을 확보했을 때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에 안도했다 . 소양초에서 소양천을 건너 직진하면 망표마을이다 . 위성지도로 보면 용봉산의 봉황이 날개를 살짝 오므려 마을을 품고 있는 형상 . 외길이라 길을 잃고 헤맬 염려는 없다 .
2 월말부터 3 월초까지 몇 차례에 걸쳐 마을을 찾았다 . 흐리고 맑은 날이 반복됐는데 비가 오면 마을을 구경하고 맑은 날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 굽은 허리에 뒷짐을 진 채장임 (79) 할머니는 알갱이 비료가 든 쇠그릇을 들고 마늘밭으로 가고 계셨다 .
“ 이것 ( 비료 ) 쪼께 마늘밭에 주려고 . 우리 남편이 일찍 돌아가셔서 고생 겁나게 했어 . 아들 셋 키우느라 전주 공장서 일 다녔는데 안 해본 일이 없네 . 지금 허리가 안 좋아서 큰 아들하고 같이 살고 있어 .” 용연리가 고향인 채 할머니는 결혼 이후 망표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
용연리 또한 소양이니 평생 소양을 벗어난 일이 없는 셈이다 . 주민 이모 (49) 씨는 채 할머니와는 달리 최근 마을로 이주했다 . 서울이 고향인 그는 직장 때문에 20 년 이상을 전주에서 살다 완주로 귀촌했다 . “ 소양면소재지에서 2 년 정도 살다 이 마을로 왔어요 .
사면이 다 산이라 경치도 좋고 전원주택단지도 아니어서 맘에 들었어요 .” 마을의 끝 , 그리고 성불사로 오르는 시작점에 황운저수지가 있다 . 이곳에 조성한 아담한 둘레길을 노부부가 다정히 걷고 있었다 . 4 년 전 임실 강진에서 이사 온 이종기 (81), 김계순 (78) 부부다 .
“ 우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맨날 다섯 바퀴씩 돌아요 . 그러면 딱 한 시간 정도 되는데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 앞으로 여기서 오순도순 잘 살고 싶어요 .” 부부는 이곳에 살기 전 모악산 같은 데 등산하는 걸 좋아했다 . 그래서일까 부부는 산책길을 이 마을 최고의 장점으로 꼽았다 .
곁에 보이는 마을 곁보래 둘레길을 산책하고 돌아오던 유순 (81), 임정님 (88) 할머니와 마주쳤다 . 두 분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낸 이웃인데 정류장을 보자 시내버스가 끊겨 겪게 된 불편함이 생각나셨나보다 . “ 원래는 전주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있었는데 이젠 없어지고 마을버스가 다녀 .
전주 갈람 황운리에서 갈아타야 되니까 나이 든 양반들은 힘들지 . 짐 들고 댕길라면 너무 힘드니까 . 여기 이용객이 별로 없긴 하더라도 하루에 몇 번이라도 다녔으면 좋겠어 . 전주로 뭐 사러 갈라면 골치 아파 .” 마을버스인 부릉부릉 행복 버스가 하루 네 차례 마을을 오가며 시내버스를 대신한다 .
마을로 오는 첫 차는 아침 7 시 10 분에 소양농협 앞에서 출발하고 면소재지로 가는 막차는 오후 3 시 40 분에 마을종점을 떠난다 . 저쪽에서 출발해 도착하고 다시 마을을 나가는 시간이 10 분 만에 이루어지는 길지 않은 동선이다 . 망표마을은 소양 황운리에서 가장 남쪽에 있다 .
마을은 상망표와 하망표로 나뉘는데 과거 상망표에는 임씨 가문이 , 하망표에는 전주 이씨 가문이 모여 살았다고 전해진다 . 망표마을은 겉보래 혹은 것보래라 불리기도 하는데 문헌에 따르면 이 명칭은 근처에 먼저 있었던 마을에서 곁에 바라보이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
하지만 마을 분들은 겉은 별거 없는데 안에서 보면 아늑하고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파란 대문 집에는 스물다섯에 마을로 시집 온 유복남 (85)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 “ 이 집 오래 됐지 . 나 각시 때 지어진 집이니까 . 여기서 열두 식구가 살았어 .
시어머니도 모시고 시누이하고도 같이 살았으니까 . 옛날 생각하면 깜깜해 . 원래 집을 새로 지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됐어 .” 외풍 들어 서늘한 방안에 놓여있는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 아궁이에 불을 때야하지만 할머니는 아들이 사다준 나무를 아껴 쓰느라 당신의 몸은 뒷전이다 .
“ 아들이랑 며느리가 와가지고 이렇게 해줬어 . 전기장판까지 깔아놓으니까 따숴 . 요즘은 밖에도 잘 못나가고 집에서 놀아 . 집에서 뭐 하겠어 . 청소나 해야지 .” 그래선지 할머니의 나무마루는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깨끗했다 .
작년 여름 경상도에서 성불사로 출가한 법전스님은 우리가 방문한 날 약사여래에게 서원 중이었다 .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 . 그 권능이 코로나에 지친 중생에 닿길 바랐다 . 석불의 어깨를 적신 빗물은 계곡을 따라 마을로 흘러 주사랑교회와 소양성당을 적시고 소양천의 일부로 녹아든다 .
자비와 사랑이 흐르는 길 위로 산수유 꽃과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 송지명 ( 소양초 6) 군은 매일 이 길을 걸어 학교에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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