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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6.03.16

노거수 아래, 봄이 오는 원수선마을

노말례 어르신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6.03.16 10:14 조회 1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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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느티나무 친구 삼아 굽어치는 세월 보냈지 노말례 어르신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는 길, 집으로 돌아가는 노말례(94) 어르신의 뒤를 따랐다.

초봄의 따스한 햇볕과 아직 서늘한 냉기를 품은 바람이 공존하는 오후, 실버카를 밀며 천천히 걷는 어르신의 발치에는 동네 강아지들이 장난스럽게 얼쩡거린다. 그 평화로운 산책 풍경을 보고 있자니 보는 이의 마음마저 절로 느긋해진다. 말례 어르신은 율소리 친정에서 사남매 중 외동딸로 태어나 귀하게 자랐다.

산책을 마친 노말례 어르신이 대문 앞에 앉아 마을 느티나무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산책을 마친 노말례 어르신이 대문 앞에 앉아 마을 느티나무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로서는 꽤 늦은 나이인 스물넷에 이곳 수선리로 시집오며 어르신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빨래며 음식이며 해본 적 없던 그는 시누이 넷과 시부모님을 모시는 대가족의 며느리가 되어 낯선 살림을 시작했다. 다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 안 해본 일 없이 억척스럽게 일했다.

상추 작목이 들어온 뒤로는 밤낮 없이 상추를 따서 판 돈을 한 푼 두 푼 모았다. 그렇게 모은 귀한 돈으로 전기세를 내고 마침내 집 근처에 밭 두 마지기를 직접 장만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와 남편을 대신해 시아버지를 일흔넷까지 지성으로 봉양한 것도 오롯이 어르신의 몫이었다.

고된 세월이었지만 원망 대신 책임을 다했다. 그 마음을 아는지, 객지에 나간 시누이들은 지금도 수시로 말례 어르신의 안부를 물으며 친동기 이상의 우애를 나누고 있다.

“칠석날이면 느티나무 아래서 국수 삶아 먹고 풍물 치며 참 재미있게 놀았는데, 이젠 동네 양반들이 많이 떠나 적적해.” 대문 앞에 앉아 맞은편 느티나무를 보며 옛 추억을 회상하는 어르신의 목소리에는 담담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살아온 이야기 끝에는 “남이 하란 대로 하지 말구, 찬찬히 자기 생각을 혀.”라며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도 덧붙였다. 언제나 흰 단발을 잘 빗어 넘기고, 핀까지 꼽은 단정한 차림새의 노말례 어르신. 모진 풍파에도 스스로를 잃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온 모습이 눈 앞의 느티나무와 닮아 있었다.

현장 사진

노말례 어르신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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