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 소덕임씨가 오성한옥마을에 둥지를 틀게 된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소리는 운명 , 소양은 인연 국악 공부 위해 이주 “ 권삼득 고장에 소리꾼 하나 있어야 ” 차 한대가 간신히 들어올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오르다보면 주변 산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소리와 그 장단에 맞춰 노래하는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 인근에는 주황색 지붕의 아담한 집이 있다 .
대문 앞 나무에는 ‘ 국악인 부부의 집 ’ 이라는 문패가 걸려있다 . 집 밖에서 기웃거리던 찰나 , 우리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소덕임 (60) 씨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집안에 들어가자 벽에는 사진과 상장들이 가득했고 , 진열된 크고 작은 가야금과 옷장을 채운 고운 한복들이 있었다 .
그것이 국악인으로 살아오고 있는 소덕임씨의 삶의 일부였다 . 2 014 년 소덕임 (60) 씨는 남편과 함께 소양오성마을로 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 “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을 갖다보니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으려고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여러 집들을 보러 다녔어요 .
문득 몇 년 전 소양에 있는 음식점 산수촌에 놀러왔던 것이 떠올랐던 거죠 .” 문득 떠오른 소양오성마을의 기억이 한없이 좋았고 , 부부는 이 마을을 다시 찾게 됐다 . 처음에는 공부할 목적으로 이사 왔지만 그게 마음대로 잘 안된다며 덕임씨는 웃는다 .
그녀의 남다른 국악사랑은 주변인들도 고개를 끄덕할 정도다 . 그도 그럴 것이 국악과 인연이 닿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후 배운 피아노 실력으로 피아노 교습을 했어요 . 전주풍년제과 사거리에 위치한 버들피리악기사라는 곳을 우연히 지나다 진도아리랑을 듣게 되었죠 .
마치 운명처럼 악기사 안에 들어가 흘러나오는 노래에 대해 물었고 , 노래를 배우려면 국악원에 가야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 사대부 사상이 있었던 가풍 탓에 음악을 배운다는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고 덕임씨는 가족들 몰래 국악원에 나가야 했다 . 그때 나이가 서른 초반 .
국악원을 찾으니 또래보다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 “ 어려웠던 장단이요 ? 그런 거 전혀 없어요 . 어느 정도 제가 끼가 있었나 봐요 . 장구선생님도 저를 제일 앞에 앉게 했어요 .” 몰래 국악원에 간 것을 가족들에게 들킨 뒤 5 년가량 국악을 쉬어야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시 시작했다 .
집안가득 채우고 있는 국악자료들. 한편 덕임씨의 배움에는 끝이 없다 . 풍물 , 시조 , 농악 , 무용 , 여러 악기까지 . 그녀에게 국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은 “ 행복한 삶의 발자취 ”.
그녀는 상장과 상패가 하나 , 둘 쌓여가고 , 20 년 경력이 다져지는 만큼 더욱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 “ 지금은 소리공부를 하고 있어요 . 부족하지만 내년에는 심청가 완창을 한번 해보려고요 . 앞으로도 국악을 해야죠 .
제가 국악을 좋아하거든요 .( 웃음 ) 소리꾼 권삼득 출신지에서 소리하는 사람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 한편 마을의 공연 기획도 맡을 정도로 마을 일에도 적극적인 덕임 씨 . 아쉽게도 다른 일정과 겹쳐 이번 마을 축제에는 참여를 못한다 . 대신에 그는 마을에 응원을 보냈다 .
“ 축제라는 마당을 통해 주민들이 더 화합했으면 좋겠어요 . 또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서 마을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요 .” ■ 소덕임씨가 들려주는 완주 소리꾼 권삼득 권삼득은 전라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에서 태어났고 , 판소리 근세 8 명창 중 한 사람이다 .
권삼득은 안동 권씨 명문가에서 권래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싫어했다 . 오직 소리 공부에만 전념하다 자신의 족보까지 없애가며 본명 권인정이 아닌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소리꾼 권삼득으로 살았다 .
그가 죽고 완주군에 묻혔어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추모제까지 지내고 있을 정도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 판소리는 서민층의 문화였지만 의외로 선비들이 서민들보다 더 좋아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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