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점빵은 버스가 들어오는 종점이나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 등 목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소양 송광사 앞에는 지금 세 곳의 점빵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추억 한 봉지, 기다림 두 봉지...그곳에선 이야기를 판다 눈 깜빡이는 속도만큼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 시내로 나가고, 대형마트를 찾는다. 그러나 여전히 시골의 길목과 버스 종점 자리에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빵들이 있다. 이들은 어찌보면 경쟁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든든한, 세월의 광속을 함께 견뎌온 동반자이다.
# 동상면의 첫 번째 점빵 '동신상회' 고산에서 동상면 소재지로 가는 방향 , 동상초등학교 너머에서 동상면의 첫 번째 점빵을 만날 수 있었다 . 주인장 (84) 은 동네 친구를 불러다가 늦은 점심을 막 마친 참이었다 .
두터운 검은 먼지가 내린 일회용 카메라 , 색 바랜 화투 , 쓸모 모를 낚시용품 등이 막 점심을 마친 주인 할매와 함께 새로운 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 “ 여긴 나 혼자 살어 .” 아들이 하던 가게를 이어 수년 째 늙은 어매가 동신상회의 자리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
판매용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따름이라는 물건들과 함께 . “ 여기는 오가는 사람들이 거즌 없어 . 과자나 살 게 있어야는데 그런 게 없잖어 . 봐바 . 뭐 살게 있간 ?
그냥 예전에 아들이 사놨던 것들만 몇 개 있어 .” 할매의 침대가 놓인 방에서 바깥 길가가 훤히 보인다 . 오가는 사람도 없다지만 , 인기척이 들리면 언제라도 뛰쳐나올 수 있게 . 담배와 아이스크림 정도가 동진상회에서 가장 잘 , 그리고 유일하게 팔리는 물건들이다 . “ 아이스크림 잡쉈지 ?
내한테 5,000 원 줬응게 내가 얼마 냉겨줘야혀 ?” 객이 계산을 하고 건네받는 양심의 잔돈 . 동상면의 첫 번째 점빵에는 객의 셈과 양심을 필요로 하는 늙은 어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
# 우체부를 기다리는 ‘ 밤티상회 ’ 여름에 많은 피서객들이 몰리는 운일암반일암으로 가는 길목에는 ‘ 점빵 ’ 보다 ‘ 슈퍼 ’ 라는 이름이 어울릴만한 가게들이 몇 있다 .
위치가 위치인지라 , 외지인들이 찾을만한 물건들을 모두 구비해놨다는 듯 ‘ 잡화일절 ’ 이라는 문구를 크게 걸고 지나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 그 곳을 지나 한참을 더 들어갔다 . 황조리 마을을 지나 ‘ 밤티슈퍼 ’ 라는 수줍은 이름을 내건 허름한 가게 앞 .
1 인용 갈색 소파에 앉아 길목을 응시하는 한 할매가 있었다 . 내리는 어설픈 비를 보는지 , 사람을 기다리는 건지 모를 응시 . ‘ 슈퍼 ’ 라는 글자가 드문드문 지워진 낡은 간판을 지나 인사를 건넨다 .
“ 아이고 , 어디서 예쁜 사람이 왔네 .” 처음 보는 객을 어여쁘게 반겨주시는 80 살의 송안순 할머니 .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은지 45 년 ‘ 밖에 ’ 안됐다며 너스레를 떤다 . “ 전주 살다가 45 년 정도 전에 여기로 들어왔어 .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 동네 점빵은 이거 딱 하나여 .” 간만에 들려온 객 목소리가 반가운지 점빵 앞집에 사는 나봉국 (80) 할아버지까지 얼굴을 비춘다 . “ 내가 여서 나고 자란 토백이여 . 이 점빵에도 소싯적에 많이 갔지 . 그때는 친구들이랑 막걸리 먹고 재미지게 놀았어 .
지금이야 그 친구들 다 없어져서 심심하지 .” 하루 5 대의 버스가 지나가는 동상면의 끝자락 밤티마을 . 밤티상회는 그 옛날엔 남자 농구화 , 빨랫비누 , 막걸리 , 국수 , 성냥통 등 안 파는 게 없던 만물가게였다 .
장사꾼들이 맡겨놓은 큼지막한 보따리를 맡아주는 일도 매일 , 잠을 청하는 객들에게 빈방을 내주는 것도 일상이었고 , 라면에 우거지국에 밥을 차려주는 것도 늘상 . 안하는 게 없었고 , 못하는 게 없었다 . “ 라면이 귀했던 시절이여 . 남자들이 쇠고기가 먹고 싶다면 삼양라면 끓여서 내줬지 .
그게 쇠고기 국물이니께 . 그땐 전기가 없었으니까 성냥통이 제일 잘 팔렸어 . 시방 그땐 돈 되는 거라면 다 팔았어 . 요새는 ? 요새는 쇠주가 젤 잘 팔리는 거 같아 .” 지금은 송 할머니가 직접 타주는 종이컵 믹스커피와 몇 가지 간식거리 , 담배 등을 팔고 있다 .
“ 내가 기가 맥히게 커피를 잘 타 . 한 잔에 500 원인데 실은 돈도 잘 안 받고 줘버려 . 지나가는 사람이 목 마르다 치면 기냥 우리집 물 줘버리지 , 팔진 않어 . 사람이 돈만 보지 말고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해 . 목마르면 잡수고 가시오 , 하는 게 베푸는 거지 별거 있나 .
그게 이웃이야 .” 여태껏 직접 사람이 마을을 찾아 세금을 받아갔었는데 , 오늘부로 자동납부 변경이 됐단다 . 매번 마주하던 반가운 얼굴이 하나 없어졌다 . “ 뭐 별 수 있나 . 세상이 변해가는데 . 괜찮아 . 그러고 저러고 사는거야 . 그래도 오는 사람은 계속 와 .
지금도 시방 우체부를 기다리고 있는거여 . 한 3 시쯤 온다던데 , 아즉 안오네 . 언젠가 오겠지 . 자네도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고 하면 기냥 가지 말고 한번 들려 . 커피캔이라도 하나 먹고 가 .” 동상면 밤티마을에 있는 밤티상회. # 송광사 앞 사라진 종점, 그 곳에 점빵은 여전히 있네.
시골 점빵들을 살펴보면 공통된 점이 하나 있다. 이들이 위치한 곳이 사람 왕래가 많았던 길목과 버스 종점 인근이라는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고 지나가는 곳. 점빵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곳에 말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수년 전엔 버스 종점 자리였던 소양면 송광사 인근에도 점빵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한마음 슈퍼, 대광슈퍼, 한마당 슈퍼가 그것. 대광슈퍼에는 40년도 더 된 파란 ‘돈통’이 하나 있다. 이 돈통이 나름 굴곡진 사연을 담고 있다.
“나 밥 먹고 있을 적에 마을 애들이 이 돈통을 훔쳐갔었어. 돈은 다 빼가고 돈통만 어디 논인가에 버려놨더라고. 내가 그걸 다시 찾아와서 퐁퐁으로 다시 씻어서 쓰고 있는거여.” 왜 새 걸 사지 않으시고, 라는 질문에 “뭐더러 사. 이게 좋아” 하고 말을 던지는 주인장(78).
그 옛날엔 이 마을 앞이 송광사 행 838번이 다니던 시내버스 종점 자리였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종점이 없어진지 대략 10년 정도 된 것 같단다. “옛날엔 온통 자갈밭이었어. 종점이 이젠 없어졌지 시방.
옛날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릉부릉하고 다녔는데 요샌 그 소리가 안 나니 조용하긴 혀.” 종점행 버스는 이제 오지 않지만 이들 점빵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바쁘게 변화하는 세월에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는 이들. “여그 없으면 이제 심심해서 안뎌. 점빵이 사랑방이라니께.
심심하면 다 여기로 나오거든. 내 자식만큼 여 점빵도 나이를 많이 먹었어.” 어찌 보면 시골 점빵에 ‘이름’이나 ‘간판’이 필요 없는 이유가 있다. 그때 그때마다 쓸모가 생겨나고, 이름이 생겨나기에. 없는 게 없고, 모르는 게 없는 공간이기에.
이름이 없어도 ‘거그’하면 ‘척’ 하니 알아듣고, ‘거시기’하면 ‘탁’하니 알아채는 신박함. 그래서 그런가보다. 그 어디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을 ‘점빵’이라 간명하게 부르는 이유가. 송광사 앞 대광슈퍼 내부(위), 40여 년 된 대광슈퍼 돈동(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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