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 구억정미소 사람은 바뀌어도 상호는 50 년째 그대로 용진읍 구억리 길목 어디쯤에 ‘ 구억정미소 ’ 가 있다 . 용진읍에서 소양으로 향하는 2 차선 도로를 지나다 보면 파란색 함석판에 쓰인 ‘ 쌀 ’ 이라는 간명한 단어가 보인다 . 열려있는 커다란 철문 속으로 들어가 본다 .
비뚤어진 나무로 짠 높은 천장 , 빛바랜 나무로 된 긴 도정기 , 높은 천장 속에서 들리는 참새 울음소리 . 누구든 소리 내어 감탄할 수밖에 없는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 용진 구억정미소 주인 이영섭씨가 지난 20년 세월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이영섭 (57) 씨는 구억정미소의 공식적인 여섯 번째 주인장이다 . 1967 년 3 월 19 일 정미소가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51 년 . 영섭 씨에게 물려준 다섯 번째의 주인장이 그의 아버지였는데 어쩌다보니 정미소가 ‘ 대 ’ 를 잇는 가업이 되어 버렸다 . “ 제대하고 보니까 아버지가 아프셨어요 .
이거 안 하고 싶었는데 동생들 교육도 시켜야하고 부모 봉양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안 해요 . 제대하고 나니까 제 나이가 스물여섯 . 그때부터 여길 했으니까 제가 한지도 30 여년은 됐네요 . 처음엔 딴 세상이더라고요 . 막막하고 .
그래도 아버지가 하셨으니 낯설진 않았어요 .” 방앗간 주인 이영섭씨의 인생 지향점. '웃으며 삽시다' 반백년의 역사처럼 정미소 구석구석에서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 요새 흔히 보는 깨끗하고 간편한 도정기 대신 때가 묻고 키가 커다란 도정기가 서있다 .
천장이 대략 건물 3, 4 층 높이는 되어 보인다 . 20, 30 대였던 영섭씨가 ‘ 통통기 ’ 라고 부르던 발동기를 돌리면서 시작됐던 정미소의 하루 . 지금은 모두 전기모터로 기계를 돌리다보니 몸은 편해졌다 . “ 지금은 이런 기계 없죠 . 기술 발달하기 전에는 도정기가 이렇게 높았어요 .
승강기라고 불렀죠 . 마을에 정미소가 하나씩은 있었는데 구억리에는 여기 하나였어요 . 그땐 꽤나 컸죠 . 동네 사람들이 소 구루마 끌고 경우기 타고 리어카 끌고 다 여기 왔었어요 . 천장이 왜 높냐면요 , 쌀은 열을 식히면서 찧어야 해요 . 더운 공기가 다 위로 가야하니 높이 지을 수밖에요 .
여름에는 되레 시원해요 .” 구억정미소의 건물 기둥과 천장은 모두 나무로 되어있다 . 쇠가 주는 세련되고 번듯한 느낌은 없지만 대신 나무가 가진 따뜻함이 있다 . “ 나무가 좋아요 . 물을 머금고 뱉으니까 계절에 따라 온도 조절을 해요 . 결로가 생길일도 없죠 . 옛날 꺼가 좋아요 .
예전에 태풍이 왔는데 컨테이너들이 뒤집어 지고 난리가 났어요 . 걱정이 돼서 정미소를 와봤는데 문제없었어요 . 천장에서 나무들이 움직이더라고요 . 못 없이 짜 맞춤으로 된 것들이라 절대 부서지지 않아요 . 유연성이 있죠 . 그나저나 세월 훅 가버리네요 .
30 년도 금방 지났어요 .” 구억정미소는 여섯 명의 주인을 맞이했지만 이름은 변한 적이 없다 . 구억정미소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 구억리에 위치한 당시의 하나뿐인 정미소였기에 이런 이름을 가졌을 거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 아 이름 바뀌면 헷갈리잖아요 .
그리고 이름 좋지 않아요 ? 돈이 많잖아요 . 이름부터 구억이나 되니까 .” 얼마 전 우리나라 1 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또 감소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두 끼도 안 먹는 셈이라고 했다 .
특별한 날 먹을 수 있던 귀한 쌀밥을 이제는 앞에 두고도 먹지 않는 상황이다 . “ 옛날에는 쌀이 나라를 좌지우지 했잖아요 . 정미소도 잘됐겠죠 . 제가 일 시작했을 무렵부터 쌀값이 떨어졌어요 . 우루과이라운드 때가 제일 힘들었네요 . 쌀 수입 땜에 쌀값 떨어지고 .
그때부터 방앗간들이 하향세를 겪은 거 같아요 .” 구억정미소 간판은 모두 그가 만들었다 . 자칭 ‘ 맥가이버 ’ 의 손에서 탄생한 튼튼한 간판이다 . “ 내가 이 동네 맥가이버예요 . 그림도 좀 그리니까 간판 글자도 페인트로 다 그렸죠 .( 웃음 ) 사람이 언젠가는 죽잖아요 . 욕심내면 안돼요 .
재미있게 살아야 되요 . 그냥 재미있냐 ? 아니죠 . 아 ~ 주 재미있게 살다 가야되는 거예요 . 나는 노는 게 제일 좋아요 .” 정미소에서 ‘ 정미 ’ 라는 단어는 ‘ 찧을 정 ’, ‘ 쌀미 ’ 다 . 정은 찧다라는 뜻 외에 정하다 , 깨끗하다 , 정성스럽다는 의미도 있다 . 정성스러운 쌀 .
수십 년간 한자리에서 ‘ 밥맛이 좋은 쌀 ’ 을 찧어온 구억정미소의 밥맛이 문득 궁금해졌다 . 왠지 낡고 오래된 나무처럼 따뜻한 맛이 날 거 같다 . 1967년 3월 19일 입주표시가 있는 구억정미소의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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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