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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4.08.05

수해 딛고 일어나는 구름골, 운주

그날 운주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가 왔다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4.08.05 15:15 조회 3,0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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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자정부터 2시 사이 그날 운주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가 왔다 기상청 레이더 영상 속에서 남색은 시간당 100mm 이상의 비를 뿌리는 아주 강한 비구름이다. 7월 10일 자정부터 2시 사이 비구름이 천천히 이동하며 충청과 전북을 강타했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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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고기압과 서해상의 저기압이 합작한 200년 만의 기록적 폭우였다. 이 재난의 한복판에 운주면이 있었다. 7월 13일 (3일차) ■ 뻥 뚫린 하늘, 무너진 일상 운주면 운주로는 피해현장에서 끄집어낸 진흙투성이 가재도구와 수해복구를 돕기 위해 찾은 봉사 차량으로 일대가 혼잡했다.

운주체육공원, 운 주초 운동장은 밭으로 변했다. 건강원, 생닭집, 종합설비, 인테리어, 자재총판, 식당, 농협창고. 운주로에 기대어 생을 이어가던 가게들이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베개며 장판, 매트리스, 가구 등이 그날 새벽의 참혹함을 증명했다.

생활문화 공동체센터 뒷마당에는 장애인용 전동휠체어가 흙물을 뒤집어쓴 채 서 있었다. 침수차량을 실은 견인차들이 분주히 오갔다. 운주세탁소 지연자 씨는 드라이클리닝 기계에 들어찬 흙물을 퍼내고 있었다. “이 기계는 이제 못 써요. 수리가 안 된대요.” 세탁소 안은 온통 흙바닥이었다.

벽에 남은 흔적으로 추정하면 그날 90 여cm 높이까지 물이 들어찼다. 그녀가 간혹 잠을 자기도 하는 쪽방은 충분히 잠기는 수위다. 그 날 그녀가 집이 아닌 가게에서 잠을 잤다면 두려운 순간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손님들이 맡긴 세탁물은 옷걸이 매달려 있어 손상되지 않은 게 그 나마 다행이었다.

물에 젖고 진흙에 망가진 재봉 틀이며 냉장고가 가게 앞에서 정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어난 물은 낮은 자에게 더 가혹했다. 일대 주민들은 그날 오전 2시에서 4시 사이 마을 이 강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장선천을 넘어온 물이 북당골과 부엉골에서 쏟아진 물과 합세해 내촌마을과 중촌마을 등을 휩쓸었다.

내촌마을 임선우 씨의 밭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구겨진 비닐하우스 철 구조물로 엉망이었다. 모두 다른 곳에서 떠밀려 온 것이다. “그날 일대가 가슴높이까지 찼어요.

물살이 얼마나 셌는가 전봇대가 쓰러지고 컨테이너가 밀릴 정도였지요.” 박명철, 박수연 씨는 물에 쓸려 온 비닐하우스에 막혀 열리지 않는 현관 대신 거실 창을 통해 가까 스로 몸을 피했다. “문이 안 열리니 이대로 죽는 구나 싶었어요.

지금도 놀란 가슴이 가라앉지 않아요.” 탈출한 주민들은 옥상이나 산에 올라가 구조대를 기다렸다. 이선재 씨의 집은 장선천에 붙어 있다. 그날 새벽 2시 30분쯤 그녀가 잠에서 깼을 때 장선천이 범 람하고 있었다. “일어나니 이미 화장실까지 물이 차서 찰랑찰랑하더라고요. 엄청 무서웠어요.

다행히 도로까지는 물이 안 들어와서 차를 가지고 장선교 너머 월당으로 대피할 수 있었어요. 혈압 약을 집에 두고와 가지러 가고 싶었는데 이미 그럴 수 없는 지경이었어요.” 물은 순식간에 불어나 장선천과 주거지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운주 토박이로 1955년생인 이 씨가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 재난현장으로 달려온 사람들 운주면행정복지센터에 재난피해복구 캠프가 세워졌다. 완주군자원봉사센터를 비롯해 모범운전자, 의용소방대, 새마을회, 군 장병, 소방관, 경찰관, 한전 등 수많은 사람이 피해복구를 위해 달려 왔다. 삼성과 엘지 등 가전 서비스센터도 출장소를 차려 주민들의 가전을 살폈다.

삼성전자서비스 광주센터 오중민 씨는 이날 침수 세탁기를 뜯어 세척하고 있었다. “당시 전기를 꼽은 상태만 아니라면 대개 수리가 가능합니다. 세척 해서 건조하면 다시 작동하는 경우가 많죠. 냉장고 같은 건 물이 닿는 순간 누전차단기가 내려가 큰 피해를 막을 수 있고요.

다만 컴퓨터나 텔레비전 등은 복구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출장소에는 사흘간 50여 건의 A/S가 접수됐다. 이보다 훨씬 많은 가전이 길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중에는 수리가 어려운 제품들도 다수 있었다.

침수 주택에서 주민을 구조하는 완주소방서 119 구조대원들
침수 주택에서 주민을 구조하는 완주소방서 119 구조대원들

가전 수리현장 한쪽에는 완주군정신건강복지센터 마음안심서비스가 수해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완주군자원봉사센터 사랑의 밥차팀은 이날만 1,000명분의 음식을 준비했다. 이들은 수해 첫날부터 달려와 땀을 흘리고 있었다.

현장을 지키고 있던 서선영 국장과 이은주 팀장은 “이곳 상황이 계속 바뀌고 있어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복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까지는 계속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7월 18 일 (9일차) ■ 씻어내고 메우고 바로 세우고 다시 찾은 운주로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전주와는 조금 달랐다.

망가진 살림살이로 가득했던 거리가 정비되어 있었고 진흙으로 가득했던 가게 안도 정돈되어 있었다. 몇몇 가게는 다시 문 열 준비로 바빴다. 하지만 침수 흔적은 여전했다. 조인자(56) 씨는 이날 완주군여성합창단과 함께 호꼬빼기 유원지 수해복구 현장을 지원했다. 벌써 세 번째 방문이었다.

그녀는 앞서 완주군새마을회, 그리고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운주면을 찾아 수해복구를 지원했다. “11일 첫 방문 당시 현 장은 암담할 정도로 처참했어요. 작년 비 피해 때도 왔었는데 그때와는 규모 자체가 달랐어요.

그래도 봉사자들이 있어 한주 만에 이만큼이나마 정리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주 내내 비 소식이 예보됐다. 이날 오전도 빗줄 기가 거셌다. 수해를 일으킨 당사자가 피해복구 도 방해하고 있었지만 봉사자들의 발길까지는 막지 못했다. 이날만 300여 명이 운주를 찾았다.

대 승한지마을 송명성 관장도 이날 내리 퍼 붇는 비를 맞으며 호꼬빼기 복구현장에 있었다. 그는 원래 완창마을 건너편 호성골유원지 복구를 도울 계획이었는데 오전에 쏟아진 비로 장선천 물이 불어나 고립될까 우려돼 급히 이곳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이날 운주를 찾아 피해 현황을 청취하고 복구현장을 둘러봤다. 그는 “피해주민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정수 운주면장을 비롯한 직원들도 몇 날 며칠을 현장에서 먹고 자며 피해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5일 완주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운주면체육공원 주차장에는 쓰레기 산이 생겨났다. 침수가옥 등에서 수거해온 살림살이가 효용을 잃은 채 쌓여 있었다. 주민들은 그만큼이 빠져나 간 자리에서 그 이상의 고통에 짓눌려 있는 듯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재난안내문자가 날라왔다.

7월 25일 (16일차) ■ 상가 간판에 다시 불이 켜졌다 운주로는 점차 평온을 찾아가고 있었다. 마당 한 편에 이불이며 옷가지를 널어놓거나 수확한 고추 를 말리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영업을 시작한 가게도 있었다. 파출소 옆 옛날짜장은 손님들로 붐볐다.

수해지역 주민들을 위로하는 유희태 완주군수
수해지역 주민들을 위로하는 유희태 완주군수

조성옥 사장은 “우리는 상대적으로 물이 덜 들어와서 지난주 중순부터 영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영업을 재개 못 한 가게들도 다시 문 열 준비로 분주했다. 머리사랑 미장원도 그중 하나였는데 전헌순 사장은 이날 26년 된 간판을 새로 달고 유 리창 시트지도 새로 붙였다. “방안까지 물이 찼어요.

온통 진흙이어서 쓸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거울만 원래 있던 거고 집기며 바닥이며 싹 새로 했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순 없어요. 얼른 기운 차려야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영업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농협 인근 용평식당과 초원식당도 29일 영업 재개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용평식당 안에 들어서니 선풍기가 식당 내부와 방안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다. 최혜순 사장은 “지금도 습기가 많아서 말리느라 정신이 없지만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영업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운주면행정복지센터는 여전히 많은 봉사자로 북적였지만 재난현장의 상징과도 같았던 완주 자원봉사센터 사랑의 밥차는 지난 22일을 끝으로 철수했다. 밥차가 필요한 상황은 지났다는 것 이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앞으로 현장에 필요한 밥은 신청자에 한해 도시락 형태로 배달된다.

5,700명이 넘는 이들 기꺼이 찾아와 도움의 손길 중앙합동조사단 조사결과 완주군의 호우 피해는 352억 원으로 사유시설 1,760건에 117억 원, 공 공시설 113건에 235억 원으로 최종 집계됐다.

이에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따른 국비 112억 원을 포함해 복구비는 530억 원(국비 389억 원, 도비 67억 원, 군비 74억 원)으로 잠정 확보됐다. 40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절대다수가 운주 면에서 나왔다. 이 중 48명의 주민은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심각하게 망가진 논밭은 농사를 다시 지어야 한다. 호우경보 뒤에는 폭염특보가 기승을 부리고 피해지원은 마음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묵은 때를 벗겨내듯 흙탕물에 잠겼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장선천은 벌써 푸르름을 회복했다.

이제 용평식당 순두부도 초원식당 백반도 다시 먹을 수 있다. 군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5,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재난현장을 찾아 힘을 보탰다. 이들 덕분이다. 한편 군에 따르면 7월 29일 기준 복구율은 87% 다. (사진=완주소방서)

복구지원에 나선 봉동로타리클럽 회원들과 의용소방대
복구지원에 나선 봉동로타리클럽 회원들과 의용소방대

현장 사진

그날 운주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가 왔다 사진 1 그날 운주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가 왔다 사진 2 그날 운주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가 왔다 사진 3 그날 운주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가 왔다 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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