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 년 운주면 완창리 호성골 인근 끄트머리 집 마당에서 20 살 남자와 18 살 여자가 결혼식을 올렸다 . 수줍음에 서로의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던 어린 부부는 이제 다섯 아들에 손자손녀까지 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다 .
그 사이 이가 빠졌고 , 걷는 것이 힘들어졌지만 , 그들 곁에는 여전히 서로가 있다 . 74 년을 늘 한결같이 서로의 옆에 있어준 임병덕 (93)- 김미자 (91) 부부 . 미자 할머니는 아래윗집에 살던 시누이 남편을 통해 지금의 남편을 소개 받았다 . 둘의 인연은 그때부터였다 .
“ 고향 진산 ( 충남 ) 서 되지게 걸어와 광두소 ( 운주면 산북리 ) 서 가마 보내준 거 타고 여 왔어 . 시집가라고 집에서 떠밀어서 온거지 .” 수십 년을 부부로 살아오면서 이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고비는 다섯 아들을 키울 때였다 . 그땐 누구든지 사는 게 힘들었다 .
자꾸 커가는 아이들 먹을거리 , 입을거리 등을 챙기느라 한 세월이 갔다 . “ 젖 먹이고 애 키울 때가 힘들었지 . 젖이 좋아서 애들 볼따구가 토실토실 올라왔었어 . 다들 이쁘다고 서로 업어가고 그랬네 .” 부부에게 70 여년을 해로한 비결을 물어봤다 . “ 우린 그래도 싸우질 않고 그렇게 잘 살아 .
아내한테는 내가 발칙한 사람이야 . 저 사람이 잘해 .”( 임병덕 ) “ 요 앞이나 뒤에 과부들이 많어 . 근데 나는 남편이 있잖어 . 서로 나빠도 살아야지 . 저 양반이 인정이 많아 .”( 김미자 ) 임병덕 할아버지는 젊을 적 동네 멋쟁이로 통했다. 백바지에 백구두를 자주 입고 신으셨다.
노부부가 나란히 카메라 앞에 앉았다 . 자식들 결혼식 때 사진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찍었으니 , 수십 년 만에 선 카메라 앞이다 . 닮으셨다는 질문에 ‘ 오래 살아서 그려 ’ 라고 대답하는 노부부 . 병덕 할아버지는 ‘ 사랑 ’ 의 정의를 ‘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 라고 내리신다 .
그리곤 얼굴에 쑥스러움이 번진다 . “ 우리가 꿀떡꿀떡 오래도 살았네 . 우리가 결혼한 지 70 년이 넘은 건 명이 길어서 그려 . 요새 젊은 사람들은 짧게 산다고도 하는데 우린 그러진 않았어 . 암 , 제일 친하지 .” 병덕 할아버지가 옆에 앉은 부인 미자 할머니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리신다 .
제일 친한 친구이자 제일 가까운 사람 . 이 노부부를 두고 우리는 가족이라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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