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불편 덕에 30년 장롱면허 탈출 교편 내려놓고 귀촌한 Y씨 Y(59) 는 김제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 서울에서 오랫동안 교사로 일했던 그는 퇴직 후 인생의 제 2 막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고민 중이었다 .
그러던 중 지난해 서울 방배동의 전북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완주군이 개최한 ‘ 찾아가는 귀농귀촌 설명회 ’ 에 참석했다 . 이후 ‘ 체류형 귀농 귀촌 교육 ’ 에 대한 안내를 받았고 , 처음에는 긴 체류 기간 등 여러 지원 여건으로 인해 고민이 길어졌다 .
결국 그는 서류 마감 직전 불현듯 한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으로 해당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 면접 및 입소 과정을 거쳐 현재 체류형 귀농귀촌 8 기 교육생으로서 완주를 탐색하는 중이다 .
■ 완주 살이 4 개월 차 , 일상이 궁금하다 완주에 와서 1 개월 정도 되었을 때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지만 , 구직은 시골 정착이 확정된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쉼이 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생각을 바꿨다 .
이곳에 있는 동안 귀농귀촌 교육을 열심히 참여하고 , 남는 시간에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면서 앞으로의 여생을 천천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 지금은 근처 농가로 가끔 실습을 나가고 ,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에는 목공 심화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
귀농귀촌 교육에 참여하고 남는 시간에는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거나 , 종이접기 또는 그림 그리기 등을 한다 . 만족할 수 있는 일상생활의 루틴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있다 .
■ 귀농귀촌 교육 중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귀농귀촌 교육 프로그램 대부분이 교육생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었다 . 지나간 교육에 대해 콕 집어서 어땠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아서 먼저 현재 받는 목공 심화 교육에 대해 말하겠다 .
교육생들의 작품 제작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꼼꼼히 지도해 주셔서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다 . 그간 프로그램 중 힘이 많이 필요하거나 섬세한 작업 등을 필요로 하는 교육은 대체로 어려웠다 .
특히 전기를 다루는 일이나 배관 작업 , 용접은 교육은 받았으나 앞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듯하고 농기계를 다루는 일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 . 교육 내용이 전반적으로 어렵지 않게 구성되었을지라도 받아들이는 본인의 입장에서는 생소한 것이라 기계치인 나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
■ 농사 경험은 농사 경험이 아예 없지는 않다 . 내가 직접 농사짓지는 않았지만 , 어릴 적 봄이면 모내기가 끝난 논에서 물 위로 올라 온 자리에 다시 모를 심는 ‘ 모 때우기 ’ 를 했고 , 여름 방학 때면 매일 새를 쫓고 , 수확 철이 되면 벼의 탈곡을 돕는 등 농사짓는 부모님의 일손을 도왔다 .
현재 공동텃밭 농사는 잘 안되고 있다 ( 웃음 ). 토마토나 가지의 곁순을 시기를 맞추어 제거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 어릴 때 부모님이 재배한 채소가 잘 자라 있어서 , 채소들이 알아서 잘 자라는 줄 알았는데 ,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키워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
귀농인의 집 근처에 있는 농가로 실습을 나가는데 , 블루베리 , 무화과 등 주로 과실수를 재배하는 곳이다 . 어릴 때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과실수의 재배 및 수확 과정 등을 체험하고 있다 . 여건이 된다면 다양한 과실수를 키워 보고 싶다 .
■ 완주에 살면서 어려움은 없는지 완주를 택한 이유 중 하나가 어린 시절 거주했던 전주 옆이기도 하고 근처에 몇몇 친구 등 지인들이 살고 있어서이다 .
전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기에 인근 지역인 완주는 세세하게 아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멀지 않고 , 연락하고 지내는 초중고 동창들이 인근 지역에 몇 명이 있기도 하고 친정 가족도 있어서 내가 이곳에 거주하는 데 심리적으로 많이 도움이 된다 .
그리고 체류형 귀농인의 집에 사는 식구들이 모두 친절하고 좋아서 함께 모여 교육받는 시간이 즐겁다 . 김경미 씨가 같은 고등학교 후배인 것을 알고 정말 반가웠다 . 그리고 용진숙 씨까지 나를 포함해서 여자가 모두 셋인데 , 동생들이 착하고 붙임성도 좋고 해서 셋이 잘 뭉쳐 다닌다 .
든든한 동생들이다 .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체류형 가족들도 모두 성격도 좋고 재미있어서 3 개월이 지난 지금은 서로 농담이나 장난도 많이 치며 서로 잘 지내고 있다 . ■ 완주에서 새롭게 도전한 것이 있는지 완주로 와서 30 년 가까이 유지하던 장롱면허에서 탈출하고 운전자가 되었다 .
체류형 귀농귀촌 프로그램 참여가 확정된 이후 실내 운전연습실과 실제 도로 연수를 하긴 했으나 운전은 참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다 . 완주에서도 운전을 안 해도 생활이 가능하다면 운전하지 않으려고 했다 . 하지만 시골살이의 대중교통 불편함이 너무 커서 서둘러 소형 중고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
면허는 땄지만 자동차에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이자 기계치인 나는 핸들 조작 미숙 , 브레이크 조작 미숙 , 속도 감지 능력 미숙 등 자동차 운전 미숙아였다 . (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먼 운전 어린이다 ) 그런데 자동차의 기본 기능도 잘 모르고 핸들 등 조작 미숙한 내게 귀인이 나타났다 .
김동문 씨가 ‘ 안전운전 방법 ’ 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 나의 운전 스승이고 은인이다 . 이 동생 덕분에 운전 실력을 조금씩 올리고 있다 . 운전 감각이 둔해서 금방금방 숙지를 못함을 미안해하면서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
나는 60 을 목전에 둔 나이에 포기했던 운전대를 잡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생에서 큰 변화를 겪는 중이다 . ■ 앞으로 바라는 점은 내 주변에도 퇴직하고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 아무런 준비 없이 농촌에서 살기는 어려워서 다들 생각만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
도시에서만 또는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에게 체류형 귀농귀촌 프로그램은 농촌 생활을 미리 진지하게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 또한 , 1 인 가구 은퇴자들을 위한 거주시설을 마련하여 은퇴자들이 농촌에서 살아보는 것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
완주에 있는 동안 이곳의 속도에 맞춰 농촌에 대해 배우고 , 또 쉬면서 좋은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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