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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1.10.13

문화가 피어나는 용암마을

이성구 이장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1.10.13 15:04 조회 3,13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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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천직이다 싶다는 성구 씨가 아내와 함께 누렇게 익어가는 논을 배경으로 미소짓는다. 자전거로 마을 한 바퀴 도는 게 일과의 시작 매 순간 최선 다하고 욕심 비우니 행복 하늘에 뜬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던 시월의 첫째 날 이장 댁을 찾았다 .

객이 왔다는 소식에 바깥에서 일을 보다 자전거를 타고 서둘러 돌아오는 이성구 (70) 이장 . 숨 고를 새도 없이 오디즙을 맛보라며 건네줬다 . 집 안 곳곳에는 그를 꼭 닮은 아이들의 사진과 아내와 단둘이 찍은 사진 , 하얀 한복 차림의 할머니와 갓을 쓴 할아버지 사진이 진열돼 있었다 .

IMG 7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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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 이장은 “4 대째 용암마을에 살고 있어 . 한 사람당 30 년씩만 잡아도 120 년을 살아온 셈 ” 이라며 긴 세월을 살아온 만큼 마을에 관해서는 모르는 이야기가 없다고 말했다 . “ 끄트머리에 있는 버드나무는 내가 태어날 적부터 그만큼 컸어 .

원래는 여섯 그루가 있었는데 늙어서 다 넘어갔고 지금 세 그루만 남은 거야 . 옛날 어른들 하신 말씀이 용바우가 마을 끝자락까지 쭉 뻗었으면 이 동네가 장군이 나올만한 명당자리가 되었을 건데 조금 짧아서 아쉬운 마음에 기를 받고 이어가라고 나무를 심었다 그러셨어 .

한 번은 토지주가 나무를 다 베어버리려고 하던 것을 그분들이 극구 말려서 지금껏 남아있는 거야 .” 어르신들께서 지켜주셨다는 나무들은 현재 그 자리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서서 동네 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 “ 예로부터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좋은 쪽으로 잘 이끌어주셔서 마을이 잘 되었지 .

그 점을 나도 본받으려 많이 노력했고 .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하려고 해 .”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둘러보는 성구 씨. 그는 열여섯 살 무렵부터 객지로 나가 돈을 벌기 시작했다 . 먹을 것은 부족하고 식구는 많았던 시절 , 어린 나이지만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어서였다 .

그렇게 7 년간 서울에서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웠고 , 이후 전주로 내려와 양화점을 차려 직접 만든 구두를 팔았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나 기계가 발달하면서 값싼 기성품 생산량이 늘어났고 , 수제화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면서 사업은 급속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

결국 그는 서른한 살이 되던 해 15 년간의 객지 생활을 뒤로하고 귀향을 결심했다 . 마을로 돌아와서는 가족들 생계를 책임지고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농사일을 했다 . 벼농사 , 상추농사 , 시설 재배 등 한창 많이 지을 땐 3 천 평까지 지었다 .

“ 사람들이 농사 참 잘 짓는다 , 베테랑 농사꾼이다 그려 . 어려서 어머니 아버지가 농사짓는 거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게 다거든 .

지금 생각해 보면 농사가 내 천직이다 싶지 .” 그는 올해로 4 년째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데 작은 마을 회관을 35 평짜리 큰 회관으로 새로 짓고 지형 특성상 장마 때마다 수해가 잦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수로 공사를 하는 등 살기 편한 마을을 만들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

“ 이 동네 사람들은 이주민들도 텃세 없이 다 안아줘 . 이번에 회관을 무사히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원주민이나 이주민 너나 할 거 없이 협조를 많이 해준 덕택이야 .

서로 칭찬해 주면서 욕봤다고 할 때 가장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지 .” 그는 보통 새벽 6 시쯤 일어나서 마을 한 바퀴를 자전거 타고 돌아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 이후 논과 밭에 나가 오전 내 일하고 , 오후에 쉬는 것이 보통의 일과이다 . “ 어려서는 다들 못 사니까 그러려니 하다가도 .

내가 19 살 때 고생이 제일로 많고 심했을 적에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다 살아났어 . 그 이후로 힘들 때마다 ‘ 내가 그때 죽었더라면 이 고생을 안 할 텐데 ’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 근데 지금은 참 행복해 . 아이들은 저마다 사회생활 잘 하고 있고 . 나랑 아내도 건강하고 .

살아보니 집안에 근심 걱정 없는 것이 제일로 행복이더라고 . 앞으로도 그렇게 욕심 안 부리고 살려고 해 . 그럼 고민할 게 없으니까 .”

현장 사진

이성구 이장 사진 1

첨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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