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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0.05.12

돌담이 예쁜 시평마을

백남식 어르신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0.05.12 14:33 조회 3,5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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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식 어르신은 마을에서 창을 잘하기로 소문났다. 직접 창을 불러주셨는데 그 솜씨가 대단했다. 매일 밭에서 구성진 창 한 가락 18 세 때 징집돼 하동서 군사훈련 돌아와 보니 부모님 다 돌아가셔 굽이진 도로를 따라 거인마을을 지나 낮 11 시쯤 시평마을로 들어섰다 .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만개한 산 벚꽃이 참 예뻤다 . 우리는 마을에서 나고 자라 가장 오래 사신 백남식 (88) 할아버지를 만났다 . 살면서 밭일을 손에 놓은 적이 없는 할아버지는 아침 7 시 30 분이면 대개 집에서 조금 떨어진 밭으로 향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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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자 집으로 안내하신다 . 이월순 (85) 할머니가 작은 쟁반에 김이 나는 커피를 내온다 .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살아오면서 싸웠던 적이 있냐는 물음에 할아버지는 “ 싸우지 않지 ” 라며 대답했지만 말이 없는 할머니 모습에 함께 웃음이 터졌다 .

“ 살면서 의견이 안 맞을 때는 있었어도 크게 싸우지는 않았어 . 그때는 얼굴도 안보고 결혼하는디 좋은지도 모르고 그냥 사는 거여 .” 전주에서 살던 할머니의 부모님이 착하고 성실하다는 할아버지에 대한 소문을 듣고 결혼을 진행했다 .

농사를 지으며 5 남매를 길러낸 노부부는 지금도 부지런히 밭에서 농사를 짓는다 . 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다 . 당시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 18 세가 되었을 무렵 6.25 가 터졌고 진안 부귀면 궁항리로 피난을 갔다 .

그 당시 군사모집을 위해 마을에서 청년들을 데려갔는데 할아버지도 피할 수 없던터라 가족을 두고 경상도 하동군으로 떠나야만 했다 . “ 가서 총 쏘는 걸 배웠어 . 주로 싸우는 거를 배웠지 .

그때는 점심이라고 밥도 한 사람 몫으로 흰쌀밥만 뭉친 주먹밥 하나를 줬어 .” 할아버지는 하동에서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 “ 오니께 우리 뒷집 할머니가 버선발로 뛰당겨오는겨 . 나를 부둥켜안으면서 야야 큰일났다 . 느그 엄니랑 아부지 싹 잡아가서 죽였다 . 이런 게로 그렇게 놀랄 수가 없었어 .

그때는 큰 이유도 없이 반동분자라고 동상면 사람들을 많이 죽였어 . 내 우로 형 하나 동생들 넷이 있는데 . 부모님이 그렇게 돌아가셨지 .”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진천리 구수마을에서 전투했던 장면이 남아있다 . 함께했던 전우들은 지독한 전쟁의 후유증으로 불구가 되거나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

그렇게 동생들을 먹여 살리려고 일을 해야 하는데 ,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동상에서 군인으로 근무하던 형과 역할을 바꿔 남은 동생들을 형이 돌보고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참전용사로 생활을 이어가다 휴전을 하게 되었다고 . 할아버지는 마을 내에서 창을 잘하기로 소문나있었다 .

쑥스러운 듯 너털웃음으로 마을마다 끼가 충만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풍물패를 만들었다 . 사람들에게 천한 것 , 상것이라고 천대를 받았지만 재주만큼은 좋았다고 . 할아버지는 일하러 나가면서 그 소리를 듣고 얼추 따라한 것이라고 했다 .

“ 그럼 부를 테니까 한번 들어봐 ” 구성진 가락으로 심청가를 뽑아내는데 역시 소문대로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 “ 우리 마을 사람들이 인심이 좋으니께 쌀이나 삯을 좀 주거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자주 왔지 .

소리도 뜻을 알아야 재미있는 거여 모르면 아무 재미가 없어 .” 할아버지는 마을이 이렇게 변한 걸 보면 참 신기하다고 했다 . 또 그냥 지금처럼 건강하게 이렇게 사는 것뿐 더 바랄 것도 없다고 . 함께 마주보는 부부의 모습이 유난히 닮아 보였다 .

현장 사진

백남식 어르신 사진 1

첨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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