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친구이자 딸이자 며느리 햇살이 유난히 뜨거웠던 오전 10 시 , 하얀 옷차림에 모자를 쓰고 도로를 가로질러 서둘러 고추밭을 향하는 이가 있다 . 올해로 귀촌한지 5 년째 되는 정은실 (54) 씨다 .
그는 시어머니 유점순 (84) 어르신 , 남편 이병훈 (56) 씨와 함께 다리목마을의 빨간 지붕 집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 어디를 급하게 가고 있나 . 지금 고추밭을 살펴보러 가고 있다 . 어머니한테 농사를 배워서 올해 처음 고추를 심어봤는데 생각보다 농사가 잘 되었다 .
밭이 넓어보여도 이 정도는 시골에서 텃밭 수준이다 . 우리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 “ 너 때문에 내가 환장한다 ” 라는 말이다 .( 웃음 ) 어머니는 일을 능수능란하게 하시는 편이고 저는 느린 편이라 답답하다며 장난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
공직자 딸로 태어나 풀 한 포기 매 본 적이 없어서 농사는 서툴다 . 하얀 옷을 입은 이유는 이렇게 입으면 모기에 잘 안 물리기 때문이다 . 귀촌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 귀촌하기 전에 남편과 서울에서 가구점을 운영했다 .
시어머니가 혼자 사신 지 올해로 15 년이 되었는데 가끔 찾아뵈면 새로 밥 해 먹기 귀찮다며 3 일에 한 번씩 밥 해 드시고 석유난로를 쓰다 보니 방바닥은 늘 차가웠다 . 이런 모습이 안쓰럽고 걱정이 되어 어머니랑 같이 살려고 왔다 . 시어머니와 함께하면서 기억나는 일이 있나 .
우리 어머니가 조금 더 건강하셨을 적에 산길을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생각난다 . 잔디도 있고 마을이 훤히 보여서 저와 어머니의 고정 산책코스였다 . 산책을 하면서 어른들이 여태껏 살아온 이야기 , 한국전쟁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 옆에서 공감해주고 들어주는 역할을 많이 했다 .
또 한글학교인 진달래학교에 다니실 적에는 과제 나오면 도와드리기도 했다 . 귀촌 후 힘든 적은 없었나 . 물론 시골에 살면서 마음에 상처도 입고 힘든 적도 있었다 . 무엇보다 올해 초 어머니가 입원하셨을 때 스스로 밥을 먹고 , 화장실을 가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됐다 .
사람은 이렇게 한차례 고비가 있어야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 시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인다 . 그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 어머니와 이렇게까지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소통이다 . 마음속에 쌓아두지 않고 사소한 것부터 불편한 점까지 다 이야기를 한다 .
어머니와 대화도 자주하고 서로 친구처럼 엄마와 딸처럼 지낸다 . 우리 어머니가 꽃을 참 좋아하시는데 나중에 여유가 되면 같이 꽃 박람회를 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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