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가락에 매료 완주 우도 농악 닦아온 풍장꾼 유재환 어르신 원수선마을은 예로부터 풍장이 활발한 곳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마을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마을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길 끝에 자리한 집 뒤로 이어진 언덕으로 올라가자 고즈넉한 소나무 그늘에서 마늘밭 풀을 매고 있던 유재환(76) 어르신을 만날 수 있었다. 흙 묻은 손을 툭툭 털며 반겨준 재환 어르신은 완주농악단장을 지냈을 만큼, 이 지역 농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온 토박이 풍장꾼이다.
유재환 어르신의 풍장 인생은 1981년 마을 어른의 소개로 좌도 농악 강철원 단장을 만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산간 지역인 비봉은 빠르고 상모 놀음이 화려한 좌도 농악을 주로 치던 곳이었다.
2년간 좌도 농악을 배우던 재환 어르신은 단장의 권유로 1983년경 이리 농악을 접하며 완주 좌도 농악 중심의 풍악에서 선구적으로 우도 농악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를 떠올리며 재환 어르신은 “느린 가락 사이사이 섬세하고 기교 넘치는 장구 소리에 빠졌다”고 말했다.
장구 명인 김형순 선생에게 배운 가락은 듣는 이와 치는 이 모두를 홀리는 마력이 있었다. 1985년 이리 농악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대통령상을 받기까지, 유재환 어르신을 비롯한 완주 농악인들의 참여와 후원이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다.
이후 그는 완주농악단을 이끌며 완주 곳곳에 우도 농악을 알리는 데 열정을 쏟았다. 세월이 흘러 상추 농사도, 감나무밭도 세를 주고 소일거리로 마늘밭을 돌보지만 풍장과의 연줄만큼은 여전히 팽팽하다. “요즈음은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자주 치지는 못하지.
그래도 순길리 사람들한테 장구 선생 소개해주고, 면이나 전주에서 큰 행사가 있어 도와 달라고 부르면 가곤 해. 완전히 손에서 놓을 수가 있나.” 재환 어르신의 말에 풍장에 대한 여전한 애정이 묻어났다.
비록 무대 위 신명나는 놀음은 뜸해졌을지 몰라도 수선리 깊은 골짜기까지 흐르는 바람에는 그가 평생 일궈온 섬세한 가락이 실려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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