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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9.06.04

꽃들이 반겨주는 화원마을

그림 같은 임금례 할머니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9.06.04 11:02 조회 3,59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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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임금례 할머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청춘이 가버렸어 달걀 까주시며 옛이야기 두런두런 내년 봄에 심으려 달래씨 받아놔 임금례 (83) 할머니가 마당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 그 모습이 마치 그림 같다 . 집 뒤에는 초록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마당에 깔린 자갈에 햇살이 반사된다 .

남편이 살아있을 적 부부가 함께 쌓아올린 흙담이 할머니를 감싸고 있는 풍경 . 이 그림 같은 풍경에서 금례 할머니는 60 년 넘게 살아왔다 . 임금례 할머니가 멀리 보이는 경각산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산과 꽃과 집, 그리고 할머니가 있는 풍경이 마치 그림같다. “ 시집와서 오두막 살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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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고 새로 지은 놈도 고가 ( 古家 ) 가 되어서 그걸 또 두 번인가 고쳤어 . 흙집이라 비 오면 흙이 떨어지고 샜거든 . 낡아빠졌지 .” 햇볕이 뜨겁다 . 모자를 쓰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 금례 할머니가 냉장고에서 돼지감자를 우려낸 물 한잔을 주신다 . 시원하고 구수하다 .

“ 어제 며느리 주려고 계란을 밥통에 삶았거든 . 근데 내 정신머리가 왜 그런가 , 준단 걸 깜박했어 . 이거 먹어봐 . 맛나 . 소금 안 찍어먹어도 괜찮더라고 .” 물과 함께 냉장고에서 꺼내온 삶은 달걀은 할머니의 주된 먹거리다 . 혼자 있다 보니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기가 일쑤 .

누군가 전기밥솥에 달걀 삶는 걸 알려준 후로 종종 해 드신다 . 할머니는 젊을 적 일을 많이 했다 . 논농사도 지었고 담배도 키웠고 누에도 치고 복숭아나무도 키웠다 . 그래서 일이라면 지긋지긋하다 . “ 우리집 영감님도 고생만 하다 가셨어 . 6 남매를 뒀는디 조금이라도 갈칠라고 뭐라도 했지 .

그때는 다 힘들었잖아 . 농사 지어봤자 배만 안 굶는 정도였지 돈을 벌었간 . 지금은 나이 들어서 일 못혀 . 나는 마당에 풀 나면 뽑고 , 작은 텃밭에 가끔 나가고 , 동네 한 바퀴 돌고 . 그러고 살지 . 심심해도 어쩌겄어 .

그래도 여가 고향이라 맴이 편혀 .” 마당이 훤히 보이는 집 문턱에 앉아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해주신다 . 시집와 일만 했던 지긋지긋한 옛날이지만 그래도 추억이라고 , 머리에 물건을 이고 남부시장까지 걸어 다녔던 이야기가 슬며시 흘러나온다 . “ 이쪽 ( 왼쪽 ) 이 고덕산이야 .

나 각시 때 마을 동무들이랑 고사리 같은 거 캐서 남부시장 가서 팔고 그랬어 . 시장 갈라면 보광재를 넘어야는데 그 경사가 말도 못혀 . 한 10 리 걸어가면 ( 전주 ) 흑석골이 나와 . 거기서 또 한참 잊고 가면 종이공장이 하나 나왔거든 . 그걸 지나서 공수내다리를 지나면 남부시장이 나왔지 .

한 20 리 됐나 싶어 . 힘들어도 그땐 어려서 그랬나 집에 올 때 동무들 만나면 웃으면서 왔어 .” 모두가 생활이 곤궁했던 시절 , 할머니는 놀 틈도 없었다 . 그래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가벼운 발걸음이 노는 것 마냥 좋았을까 . 금례 할머니가 직접 심은 작약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청춘이 이렇게 가버렸어 . 이젠 놀러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없어 . 아프지나 않으면 좋지 . 자식들 잘 되고 . 자식들이 집에 와도 뭐 해달라는 욕심이 안 생기더라고 . 오면 왔느냐 , 가면 잘 가거라 .

이러고 말지 .” 아담한 흙집에서 부부와 6 남매가 북적거리며 살던 그 시절도 사라졌다 . 이제는 바라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금례 할머니 . 마당에는 소쿠리에 달래씨가 있다 . 얼마 전 할머니가 씨를 받아온 것들이다 . 이 씨앗은 봄이 오면 밭에 뿌려져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

올 여름이 , 그리고 가을과 겨울이 무사히 지나면 할머니의 새로운 봄도 찾아오겠지 . 새로운 계절아 왔느냐 , 지나간 계절아 잘 가거라 하시며 .

현장 사진

그림 같은 임금례 할머니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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