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화신 어르신이 대문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담장에 '어서오십시요' 문구가 눈길을 끈다.
“ 힘들었던 시절만큼 이젠 웃고 싶네 ” 입 덜겠다고 열일곱에 시집와 나물캐고 노점에 민박까지 사별후 6 남매 억척스레 키워내 “ 어디 , 나 살았던 이야기 좀 한번 들어볼텨 ?” 정화신 (82) 할머니는 집 구경도 , 이야기도 해주겠다며 손을 잡아끌었다 .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는 화신 할머니 집은 대문부터 바깥벽까지 온통 꽃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다 . 한겨울인데도 아직 봄 같다 . 할머니는 열일곱이 되던 해 , 금산군 진산면에서 기동마을로 시집 왔다 . 집안에 식구가 점점 많아진 탓에 입하나 덜겠다고 하며 이곳으로 온 것이다 .
“ 그때는 도망갈 줄도 모르고 가만히 있었어 . 가기 싫어서 사흘을 굶었는데도 부모님이 그냥 보내드라고 . 그래서 왔지 .” 시집을 왔어도 생활고에 시달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 시부모님과 어린 시누이들 , 오히려 식구들이 늘었고 낯선 곳에서 홀로 고달픈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
“ 섣달에 시집 와서 농사를 했어 . 수확을 하니까 쌀이 좀 나오대 . 그래서 쌀밥 좀 먹겠거니 했더니만 빚을 갚고 나니까 없잖아 ? 농사지어도 빚 갚느라 다 썼어 .
그러면 또 빌려야 되고 , 또 갚아야 되고 그랬지 .” 할머니는 하던 말을 멈추고 먹을 것이라도 좀 줄걸 그랬네 하며 급히 가시더니 두 손 가득 귤을 내왔다 . “ 힘들 때는 엄청 힘들었어 . 남편은 제대로 집에 뭐 가져다주지도 않고 돈만 썼지 .
그래도 그냥 살았는데 갑자기 나이 오십 먹더니 먼저 떠났어 . 아직 밑으로 6 남매가 있는데 그랬으니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어 .” 시어머니의 구박과 어린 시누이의 심술어린 장난도 그저 업이려니 하고 살아왔는데 남편이 쉰 살 되던 해 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
그렇게 딸 둘에 아들 넷을 혼자 힘으로 키워야 했던 할머니는 스스로 억척스러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 그 후 다른 집 허드렛일은 물론이고 어린 아이를 업고 나물하러 산을 올랐다 . 식당일부터 농사 , 노점 장사 , 민박집까지 돈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해왔다 . 그렇게 빚을 다 갚았다 .
“ 풀매고와서 마당에 보리를 말려놓는데 그대로 울다가 잠이 들었어 . 근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니까 보리가 다 떠내려갔잖아 . 그래도 어떡혀 . 주워서 다시 말렸지 . 내가 우리 애들한테는 참 미안하지 . 뒷바라지를 잘 못해줬으니까 .
그래도 삐뚤어지지 않고 큰 게 나는 참 자랑이야 .” - 할머니의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앨범 - 방바닥에는 잘게 썬 무를 말리고 있다. 너무 고생하고 사는 이야기만 했다며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
학교 갈 형편이 안 되었던 할머니는 만약에 글을 배웠다면 한국의 정치를 바로 세우지 않았을까하며 크게 웃었다 . “ 배우고 싶은 건 말도 못해 . 너무너무 공부가 하고 싶어 . 그전에 양학당 ( 서당 ) 이라고 있었는데 일하느라 못 갔어 .
열두 살 먹었을 때인가 윗집 사는 애는 부잣집이라 학교를 다녔는디 재순이라는 내 친구랑 둘이서 갸한테 가서 하루저녁에는 이름을 , 하루저녁에는 숫자를 배웠어 . 그냥 공부하는 게 좋아서 10 번 , 1000 번도 더 썼어 .” 배우고자 하는 열정에 친구를 따라 무작정 학교에 따라갔다 .
출석을 부를 때 몰래 따라 온 것이 들켜 선생님께 혼이 났음에도 친구의 도움으로 그날 하루만큼은 책상에 앉아 친구처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 고생한 날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고이는 할머니 . 힘들고 지칠 땐 혼자 기분 내는 것으로 만족한다 .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많이 웃고 , 어떤 어려움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 힘들었던 시절만큼 웃고 싶다는 할머니 . 그 미소가 너무 따뜻해서 이번 겨울에 눈이 내릴 새가 없었나보다 . “ 앞만 보고 한 평생 살아왔는데 ,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너무 서글퍼 . 내 청춘 다 어디 갔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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