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인물 좋은 건 아내 닮아서" 골목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다 보니 끝 집에 다다랐다 . 그 대문 앞에는 듬직한 개 한 마리가 서서 짖고 있었다 . 임귀동 (86) 할아버지는 집에서 나와 “ 얘가 사나워서 조심히 들어와야 돼요 . 근데 내 앞에선 얌전하니까 괜찮아요 ” 라며 웃었다 .
마당을 지나 옛집을 개량한 듯한 집 안으로 들어가니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 할아버지는 시원한 곶감 몇 개를 꺼내주셨다 . 늠름한 개 한마리가 대문 앞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귀동 할아버지는 마을 토박이다 .
과거에는 상망표마을에 임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어서 집집마다 거의 임씨 집안이었지만 지금은 몇 집밖에 남지 않았다 . “ 옛날엔 우리 마을에 최씨 하나 , 한씨 하나 말고는 다 임씨였어요 . 내가 수풀임씨인데 여기서 3 대째 살고 있는 거예요 .
원 시조는 나주에 있고 중시조는 임실에 있어서 옛날엔 다 같이 관광버스 타고 돌아다녔어요 . 제각은 우리 마을 산에 있는데 제사는 이제 안 지내고 모여서 점심 먹고 회의만 하고 있어요 .” 할아버지는 제각이 있는 산을 가리키더니 마을 주변 산을 하나하나 짚어주셨다 .
여느 뒷산 봉우리도 이름이 있듯 망표마을을 둘러싼 산에도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 “ 저쪽에 올라가면 매처럼 생겼다고 해서 매봉산이 있어요 . 신선들이 놀기 좋게 바위가 깨끗하니 좋아서 거기로 나무하러 많이 다녔어요 . 거기 올라가면 전주랑 군산까지도 다 보여요 .
또 매화골 , 성지골도 있고 우리 동네에 산은 아주 많아요 .” 살면서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는 귀동 할아버지 . 젊을 적엔 농사도 짓고 산에서 나무도 하면서 자식 8 남매를 키웠다 . 당시 소양면소재지 부근에 땅이 있어 마을과 오가면서 일했다 .
“ 원래 있던 땅은 진안으로 가는 4 차선 도로가 나면서 없어지고 대신 땅값을 받았어요 . 애들 갈칠 땐 농사 많이 지었는데 쌀은 아껴먹고 수수 , 조 같은 거 먹고 살았죠 . 하지감자나 고구마도 조금 짓고요 .
그때 땅 없는 사람들은 더 곤란했어요 .” 할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자식들을 보면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 현재 밭 일부는 사위에게 넘겨주고 할아버지는 작은 텃밭에서 마늘 , 들깨 농사를 짓는다 .
“ 우리 사위는 생강이랑 검은콩 좀 지어가지고 약강 ( 도매시장 ) 에다가 팔고 있어요 . 난 어저께 서울 올라가서 애들 들기름 좀 갖다 줬어요 . 들깨 지은 걸로 기름 좀 짰거든요 . 그냥 농사지어서 애들 갖다 주는 게 재미인 거죠 .” 귀동 할아버지 환갑 때 집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할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자식들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환갑 사진을 가리켰다 . 할아버지가 한평생 살아온 집 앞마당에서 온 가족이 한복을 차려입고 웃고 있었다 . “ 애들 인물이 좋죠 ? 우리 딸들은 아들보다 키가 더 크다니까요 .
아내 닮아서 그래요 . 그나저나 예전에 아내랑 일 그만하고 놀러 다니려고 10 년짜리 여권을 끊어놨는데 그걸 한 번밖에 못 썼어요 . ( 아내가 )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떴거든요 . 다른 사람들이 나보고 여행 가자고 해도 안 가요 .
나 혼자서는 가기 싫더라고요 .” 태연한 듯 말했지만 목소리에서 헛헛함이 묻어났다 . 할아버지에게 소망이 무엇인지 물었다 . “ 그래도 자식들이 찌개나 반찬 같은 것도 갖다 주고 밭도 보러 놀러 와요 . 지금도 아주 살 맛 나요 . 계속 건강만 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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