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뒤 절터에서 고샅길 위 보금자리까지 농사로 일군 삶 삼형제 댁 김순복 어르신 무더운 여름 . 해가 중천에 올 무렵이면 김순복 (65) 씨는 밭일을 멈추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 들녘 풍경과 마주 앉은 골목 어귀의 외딴집 . 대추나무와 호박넝쿨이 기척을 반기듯 담장 너머로 이파리를 내밀고 있다 .
대문이 없어 마당이 훤히 보이는 곳이다 . 김순복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그늘진 빨래터 . 이곳에 앉아 열기를 식히며 안팎으로 오가는 이웃들과 논밭의 초록을 눈에 담는다 . 순복 씨는 스무 살 되던 해 고창에서 용동마을로 시집을 왔다 . 그의 첫 번째 집은 마을 언덕배기에 자리한 보현암이었다 .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절터가 되었으나 , 과거에는 순복 씨네 보금자리였다 . “2002 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왔어 . 농사지어 조금씩 모은 돈으로 구했지 . 귀한 집이야 . 여기서 아들 셋 다 키우고 , 장가도 보내고 .”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순복 씨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끊임없이 일했다 .
그로 인해 이제는 오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몸 곳곳이 상했다 . 몇 해 전부터 심장병을 크게 앓았고 지금까지도 통원 치료를 받는다 . “ 남편하고 같이 날 밝기 시작할 때부터 일하고 나만 점심때 들어와 . 잠깐 쉬었다가 , 집안일하고 또 잠깐 쉬고 .
그러다 저녁때 되면 우리 아저씨랑 막내아들하고 같이 밥 먹고 .”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출가할 때까지 순복 씨는 40 년의 세월을 용동마을 에서 보냈다 . 삶의 대소사를 함께해 온 마을 지키기 위해 돼지 농장 재가동 중단을 위한 활동에도 힘을 보탰다 .
하루 , 이틀이 모여 몇 년에 이른 긴긴 싸움 . 순복 씨는 지난 날을 회상하며 “ 혼자 아니라 여럿이서 하니까 지치는 줄도 몰랐다 ” 며 미소지었다 . “ 온 마을에 악취가 풍기고 벌레가 들끓어서 사람 살 곳이 아니었어 .
이렇게 다 해결이 되니까 큰 짐을 내려둔 것처럼 홀가분해 .“ 마을 일도 해결이 되었으니 이제 그에게 남은 바람은 아들 셋이 무탈하게 잘 지내는 것뿐이다 . 아픈 몸을 이끌고 지금껏 농사짓는 이유도 키운 작물을 아들 가족에게 보내주기 위해서다 .
한평생 자식을 위해 살면서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 마당 한편에는 순복 씨가 수확한 깻잎과 고추가 햇빛을 머금고 마르는 중이다 . 며칠 뒤 깨와 고춧가루로 만들어 보내줄 참이다 . “ 자식들이 외지에 나가 사는데 , 부모로서 많은 도움을 못 줘서 미안한 마음뿐이지 .
농사지어 먹을 거라도 꼭 챙겨주려 그래 . 올해는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양이 적어 걱정이야 . 오늘 장에 가서 좀 더 사다 건조해 두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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