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발작 먼저와 파랗게 깨어나네 낮 기온이 영상 10 도를 훌쩍 넘지만 봄바람이라고 하기엔 아직은 차가운 바람 끝 . 그럼에도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는 것은 파랗게 변해가는 밭과 그곳에서 풀을 메느라 구부정하게 숙인 허리들 . 그리고 코를 자극하는 봄나물 향기 .
농촌의 봄이란 늘 그렇듯 , 도시보다도 늘 몇 발자국 먼저 온다 . ■ 봄 되니까 우리덜도 움직이지 고산면 명석마을의 양파마늘밭에도 봄이 왔다 . 어르신들은 새벽 6 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
제법 뜨거워진 한낮 볕을 막아줄 모자와 토시 , 장갑 , 장화를 챙겨 밭으로 나와 ‘ 늙어서 잠도 안온다 ’ 며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 “ 나는 내 농사라고 할 건 없어요 . 고추나 콩 , 마늘 같은 거 쬐금 먹을 만큼만 하는거지 . 여 이장님 밭 멘다 해서 나도 거들러 나왔어요 .
동네에는 놉 할 사람이 없거든요 . 다들 나이 많으니까 .”( 김옥순 ·77) 명석마을 양파마늘밭에서 어르신들이 풀을 메고 있다. 합쳐서 2,000 여평이 조금 안 되는 양파마늘밭에서 8 명의 어르신은 묵묵히 , 호미를 든 손을 쉬지 않고 움직인다 . “ 늦게 메더라도 꼼꼼히 해야해 .
허리 아파도 해야지 . 우리는 용돈벌이 할라고 나왔어 . 자슥들 몰래 . 내가 비싼 우유를 먹는데 그 우유값이라도 벌라구 . 집에 있음 심심하잖어 .”( 정정임 ·74) “ 아침엔 좀 쌀쌀했는데 일하니까 하나도 안 추워 . 지금 나 땀 나는 거 안 보여요 ?
아이고 , 덥네 .”( 김옥순 ·77) 쉼 없는 바지런함이 부른 허기는 배달 온 점심으로 채운다 . 오후 노동을 위한 고마운 한끼 . 이충노 이장은 행여나 밥이 부족할까 넉넉하게 시켜 지나가는 객까지 붙잡아 밥을 함께 한다 .
“ 옛날에는 집에서 밥을 싸가지고 와서 같이 먹었는데 요새는 식당으로 가거나 오늘처럼 불러먹기도 하죠 . 사람들 밥 먹는데 지나가는 사람은 못 먹으면 민망하잖아요 . 그러니까 여유있게 밥 시켜서 같이 먹는 거죠 . 드시고 가요 .”( 이충노 이장 ·64) " 밥먹고 합시다!
" 넉넉히 준비한 음식으로 다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봄이 되니 조용했던 시장도 시끌벅적 3 월의 장날 . 고산시장이 시끌벅적하다 . 봄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길목이 비좁다 . 이윽고 들리는 ‘ 펑 ’ 소리 . 그리고 풍겨오는 고소한 뻥튀기 냄새 . “ 어머니 이거 뜯느라 욕보셨네 .
돈은 잘 버셨어 ?” “ 암만 , 고마우이 . 도라지는 안 필요혀 ?” 제사상에 올릴 나물을 사러온 손님과 나물 파는 할머니 사이의 정겨운 대화가 오간다 . 시장 길목에 나란히 앉은 김점순 (88 ‧ 화산 ), 정순목 (87 ‧ 화산 ) 할머니는 갓 튀겨낸 튀밥을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앉아 있다 .
두 어르신 모두 이른 아침부터 끼니도 거른 채 바삐 고산으로 왔다 . 순목 할머니는 이곳에서만 40 여년 째 , 같은 자리에서 나물을 판다 . “ 각시적에는 바빠서 못 댕기고 서른 넘어서야 장에 나와 이것저것 팔았어 .” 김점순(왼쪽)할머니와 정순목(오른쪽)할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물 팔아 자식들을 다 키워내고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봄이면 어김없이 직접 산과 들에 나가 나물을 뜯으신다 . 멜라초 , 도라지 , 냉이 , 쑥 . “ 좀 더 줘요 . 좀만 더 넣어 . 아이 , 쫌만 더요 ” “ 나 뭐 팔으라고 .
이거하느라 손가락이 다 짜개졌구만 .” 더 달라하는 손님 말에 그만 하라는 말을 툭툭 내뱉으면서도 나물을 담는 할머니 손이 바쁘다 . 봉지에 나물 한 움큼을 넣고서는 또 한 주먹 더 넣어 보낸다 . 무릇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
■ 손주를 위해 나무를 심는 할머니 4 월 5 일은 나무 심는 식목일이다 . 덩달아 나무시장은 묘목을 사러오는 사람들로 눈코뜰새 없다 . 고산 나무시장에도 사람들 발길이 이어진다 . “ 나무 사러 양야리에서 왔어요 .
집에 왕대추 200 개 정도 심어놨는데 이번엔 다른 대추를 한번 심어볼까 해서요 .”( 유윤식 ·60) 사이좋게 파마를 만 동갑내기 세 친구들도 나무 앞을 기웃거린다 . “ 우리 셋이 동갑친구들이거든 . 장날 겸 해서 나무 살라고 왔지 . 파마는 시장 온 김에 한거여 .
블루베리 하나 심어놓으면 나중에 우리 손주 오면 따서 줄 수도 있잖어 . 맛있응게 . 근데 이거 싸게 안해주나 ? 싸게 좀 해주지 .”( 이성자 ·77) 고산 나무시장을 찾아 묘목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 가장 많이 팔리는 나무는 과일나무 .
장날이면 여러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40 여년째 나무장사를 하는 신영자 (67) 씨는 나무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 . 요새처럼 바쁠 때는 며느리가 일손을 거든다 . “ 나무장사는 봄 , 가을이 시즌이에요 . 식목일 전후로 바빠요 . 새벽 6 시에 나와서 오후 4 시까지는 있다가죠 .
여긴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아서 유실수 찾는 사람이 많죠 . 파는 종류 ? 하이고 . 워낙에 많아서 나도 몰라요 .” 겨우내 웅크렸던 자연이 , 그리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미 시작된 농촌의 봄 .
수십 년 째 같은 자리에 앉아 봄을 사고파는 노점 주인 , ‘ 자식들 몰래 ’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새벽부터 움직이는 엄마 , 그리고 손주에게 줄 과일나무를 심는 할머니 . 봄이 왔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사람들 . 늘 그러하듯 , 올해도 , 또 봄이 왔다 . 구이 호동마을에 곱게 핀 매화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