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궁금해?] 유물이야기 : 도라지 위스키의 정체가 정말 이것?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 유물 5만점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있다. 이것들을 다 둘러보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자면 몇날며칠도 모자랄 지경. 아직 방문 전인 분들을 위해 반나절 발품 팔다 만난 유물 몇 점 맛보기로 소개한다.
< 향음주례서 > 향음주례는 향촌의 선비와 유생들이 향교나 서원에 모여 고을 내 나이가 많고 덕이 있으며 학문적 재주와 행실이 고루 갖춘 어르신을 주빈으로 모시고 예절을 지키며 주연을 베풀던 자리로 , 관아의 주최 아래 음력 10 월경 길일을 택해 치러졌다 .
향음주례는 수령이 앞장서서 성리학적 질서 안에서 마을의 안녕과 안정된 통치를 권하는 자리로 , 향촌으로부터 다져진 질서는 조선사회의 기틀을 굳건히 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향음주례 주연의 마지막은 참석한 사람 모두가 “ 우리 노소는 서로 잘 어울리고 , 게으름이나 잘못으로 삶을 욕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 라는 서사를 읽으며 예법과 사양을 풍속을 일으키고 잘 지킬 것을 약속하였다는 점이다 .
< 면허준패 > 술을 만들려면 면허가 필요했다 . 명치 43 년 (1910) 공주재무서 , 대정 2 년 (1913) 울산군청 , 대정 3 년 (1914) 상주군에서 발급한 주류제조 면허준패 .
주세법 시행세칙에 따르면 술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그 주소 , 성명 , 제조 주류 종류 등을 기재한 면허 신청서를 관할 재무서에 제출하여야 했다 .
주세법에 따라 주류를 제조하고자 할 때에는 제조장 1 개소마다 면허를 취득해야 했고 , 면허를 취득한 주류제조장은 술을 빚는 종류와 양에 따라 세금을 내야했다 . 만약 면허를 취득하지 못한 자가 술을 제조했을 시 벌금에 처하였다 .
< 겹오가리 > 겹오가리는 아가리 바깥 어깨 위에 너른 테를 붙여 세워 2 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 즉 겹으로 나뉜 항아리라는 뜻이다 . 그렇다면 오가리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 전라도에서는 항아리를 오가리라고 부른다 .
겹오가리의 뚜껑을 닫으면 그 부분에 골이 지게 되는데 틈에 물을 부어놓으면 벌레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 . 그리고 보통 단 음식을 넣어둘 때 많이 사용해서 식혜단지나 고추장단지라고 불렸다 . 겹오가리의 쓰임새는 담는 것 외에도 술을 빚는 도구이기도 하다 .
골에 역시 찬물을 부으면 항아리 안에 알코올이 맺혀서 떨어지는데 이것이 증류수가 되는 것이다 . < 술춘 > 술춘은 주조장에서 제조한 술을 판매점까지 담아 배달하던 용기로 일제강점 당시 양조장에서 제조한 많은 양의 술을 유통시킬 목적으로 만들었다 .
목이 짧고 어깨는 밋밋하여 몸통은 둥근 원형으로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굴러도 깨지지 않게끔 튼튼하게 제작되었다 . 술춘 겉면에 유약을 입혀 그림과 함께 양조장이나 식당의 상호 , 전화번호를 쓰는 등 멋을 내기도 하였으나 , 무거워서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
< 소줏고리 > 『 제 98 화 < 소주의 눈물 > 편에 등장하는 소줏고리의 실제모델이다 . 『 ‘ 소주의 눈물 ’ 구성은 안성에 위치한 대한민국 술 박물관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 다 .
박영덕 , 박영국 두 형제가 지난 20 여년간 발품을 팔아 수집한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 현재까지 4 만여 점에 달하는 수집품들을 모았다고 하니 그 집념에 절로 고개가 숙여 진다 .
- 허영만 식객 국민주탄생 _ 취재일기 ,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들 중 』 소줏고리는 증류 원리를 이용해 증류식 소주를 만들 때 쓰인다 . 아래작과 위짝 두 부분이 뚫려 맞물려 있어며 , 잘록한 허리부분 아래쪽으로는 경사진 주둥이가 달려 있고 전체적인 형태는 숫자 8 과 흡사하다 .
소줏고리는 지역에 따라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며 , 모양에 따라 냉각수의 교환 횟수나 냉각 효과가 달라 얻을 수 있는 소주의 양 또한 차이가 있다 . 역삼각형인 전라도 소줏고리가 수율 면에서 가장 좋은 반면 , 아래짝이 너른 경상도 소줏고리는 안정적인 모양새를 나타낸다 .
만화가 허영만은 이 소줏고리를 통해 최상의 소주를 얻기 위해 증류하는 내내 수시로 불을 조절하고 냉각수를 갈아주어야 하는 등 고난도의 집중력과 인내력을 필요로 하는 < 소주 내리기 > 를 잘 나타내었다 .
< 라거주세요 > 1990 년대 맥주시장의 치열한 점유율 다툼은 “ 총칼 없는 마케팅 전쟁 ” 으로 이어졌다 . OB 라거는 박중훈을 주인공으로 1996 년 9 월부터 2 년 동안 시리즈로 이루어진 “ 랄랄라 , 라거주세요 ” 라는 유머러스한 광고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
< 카뮈 꼬냑 > 카뮈는 5 대 메이저 꼬냑 회사로 양장본 도서 형태를 띤 술병을 만들었다 . 표지 면에 고흐의 해바라기 , 모네의 정원의 여자들 등의 명화나 나폴레옹 시리즈를 그려 넣어 소장가치를 높였다 .
< 진로의 상징 원숭이와 두꺼비 > 진로가 문을 연 북한 서북지방에서는 원숭이가 사람 말을 이해하고 술을 즐기며 복을 주는 존재였기 때문에 당초 진로소주에는 두꺼비가 아닌 원숭이가 그려졌었다 .
그러나 진로가 1954 년 서울에 자리 한 후 서울에서는 서북지방과 달리 원숭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 심볼을 바꿀 수밖에 없었는데 닭 , 돼지 등 의견이 분분한 와중 창업주가 강한 번식력과 장수의 상징인 두꺼비를 찾아내 마크로 그려 넣었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 도라지 위스키 > 궂은 비 내리는 날 ,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 < 최백호 , 낭만에 대하여 > 도라지위스키는 1956 년 부산 국제양조장에서 주정에 위스키 향을 섞어 만든 알코올도수 45 도 술이다 .
이 술의 원래 명칭은 도리스 위스키로 , 일본 토리스 위스키 명칭을 모방하였다는 왜색상표도용 문제가 불거지자 1960 년 도라지 위스키로 이름을 바꾸었다 .
“UN 군에게 전용 판매하는 한국 최초 양주 ” 라는 홍보가 무색하게 위스키 원액이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이름뿐인 위스키였지만 , ‘ 위스키를 마신다는 기분 ’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
< 용진 주조장 > 양조장은 술이나 장 , 식초를 빚는 곳을 뜻하고 , 주조장은 더 구체적으로 술을 빚는 곳을 뜻한다 . 다른 지역들이 주조라는 이름을 압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가운데 전라도에서는 주조장이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한다 . 용진주조장 또한 그러한 지역정서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
용진주조장은 용진면 금상리 222 번지에서 탁주를 제조하였다 . 1971 년 완주군 관내 양조장은 총 17 개소였으며 , 읍면별로 고루 분포하였는데 이 가운데 삼례 , 용진 , 구이 , 조촌은 2 개소씩 있어 그 수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관내 양조장들은 대부분 탁주가 주종이었으며 , 약주까지 함께 만드는 양조장은 3 개소였다 . < 소주 미니어처 > 국내 소주제조업체에서 자사 홍보를 목적으로 제작했다 .
크기가 얼마나 작아야 , 또는 몇 ml 가 담겨야 하는지 등 미니어쳐에 대한 공식적인 규정은 없으나 , 우리나라 소주나 재제주 미니어처들의 용량은 80~120ml 까지 다양하다 .
또한 , 소주 미니어쳐는 병 몸통에 자사 소주라벨을 붙여 시판중인 소주의 축소모형으로 만들었으나 , 일부는 ‘ 토익만점 ’, ‘ 백수탈출 ’, ‘ 얼짱몸짱 ’ 등 문구를 붙여 재미와 호기심 , 소장가치를 더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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