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융단 깔렸는데 성큼 온 겨울맞이에 마음만 바빠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다 . 코끝이 얼얼해지고 손이 시린 게 가을 끝 무렵에 닿은 듯하다 . 위봉폭포 아래서 반대편 골짜기까지 이어진 길목에는 동상면 선돌 ( 입석 ) 마을이 있다 . 산 아래 길게 늘어진 이 마을에는 43 세대가 산다 .
마을을 찾은 날 , 나무들은 단풍 옷을 갈아입고 낙엽은 융단처럼 깔려있었다 . ■ 산골짜기에서 산다는 것은 선선한 가을도 잠시 , 동상에서는 며칠 전부터 물이 얼기 시작했다 . 곧 겨울이 찾아올 기세다 . 평화로운 어느 오전 , 텅 비어있는 마을회관 앞 .
지난해까지만 해도 밥을 먹거나 언 몸을 녹이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터 . 회관을 찾은 강형기 (62) 이장은 어린 시절 기억을 꺼냈다 . “ 국민학교는 지금은 폐교된 동광초등학교에 다녔고 폐교되고 나서는 소양면 송광리쪽으로 많이 갔죠 .
중학교 땐 친구들하고 새벽에 모여가지고 같이 산 넘어 학교에 갔어요 . 깜깜해도 어쩌겠어요 . 학교에 늦으면 안 되는데 .” 지금이야 산을 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길이 있지만 ,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아니었다 . 학교를 갈 때도 , 장날에 물건을 팔러 갈 때도 고개를 넘어야만 했다 .
산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지란 없었다 . 마을회관 옆집에는 이창복 (83) 할아버지 부부가 살고 있다 . 할아버지는 1995 년 단지마을에서 이사 와서 터를 잡았다 . 살아생전에 동상면을 떠난 적이 없다 . “ 여기에서 고산까지 갈람 재를 두 번 넘어야 해요 .
단지재 넘고 , 그다음엔 허기재를 넘어야 하거든요 . 허기재는 고개 넘다가 허기져서 죽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요 ( 웃음 ).” 이날 김장 준비로 배추를 뽑던 전은자 (74) 할머니도 옛 기억이 비슷하다 . 아이들 학교는 소양으로 보내고 밥과 반찬을 머리에 이고 다녔던 기억이다 .
“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살기 좋아요 . 원래는 차도 오성리까지 가서 타야했는디 이제는 여기까지 버스가 들어오잖아요 . 차 댕기니까 좋지요 .
115년의 역사를 지닌 수만교회가 있는 선돌마을 들녘에는 겨울채비를 서두르는 마을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 곶감 없이도 바쁜 손길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서늘하게 그늘진 오후 . 이맘때면 집집마다 감을 따고 깎느라 바쁘지만 올해는 어쩐지 한산하다 .
마당에 옥상에 널어져 있어야 할 곶감이 보이지 않았다 . 마을길 어귀에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이창복 할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 예부터 마을에서 벼농사나 곶감 농사를 지어왔는데 올해 곶감이 심각한 흉년이에요 .
서리가 일찍 내리는 바람에 감꽃이 떨어져 열매를 맺지 않아서 농사가 대부분 망했어요 .” 대부분 곶감 농사를 짓는 동상면 사람들에게는 타격이 클 터 . 그럼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다른 일을 하고 겨울준비를 하고 있었다 . 폐교된 학교 동광초등학교 인근 생강 밭 .
이희석 (64) 씨는 올해 처음 지은 생강 농사가 제법 잘 됐다 . 해가 조금 저물었지만 아내와 딸 모두 생강을 캐고 있었다 . “ 흙 물 빠짐이 좋아서 그런지 생강이 잘 됐어요 . 생강꽃이 백년에 한번 핀다는 말이 있던데 이번에 생강꽃이 피었네요 .
원래 같으면 지금이 농한기인데 우린 요새가 제일 바빠요 . 날씨가 더 추워져 생강이 얼기 전에 얼른 캐야 되거든요 .” 파란 대문 집 담벼락 아래 텃밭 . 유춘희 (83) 할머니는 쪼그려 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 다가오는 김장 때 쓸 김장마늘이다 .
금세 많이 까놓은 마늘들이 수북이 쌓여가고 있었다 . “ 허리가 아파가지고 일을 많이 못 해요 . 다음주에 며느리 손자 다 모여서 김장할 거예요 . 이번엔 맛있게 되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 마을회관 옆집에 사는 차점녀 (78) 할머니도 김장 준비로 바쁘다 .
잘 익은 무를 한 아름 뽑아서 어깨에 지고 갔다 . 노란 수레에는 이날 수확한 꼬들빼기와 무로 가득했다 . “ 무는 얼으면 안되니께 얼른 담글라고요 . 오늘부터 다듬고 간 죽여 놓고 씻어서 하려면 며칠 걸려요 .
배추김치는 다음주 쯤에 해야 맛있을 것 같아요 .” ■ 뿌리 깊은 수만교회 선돌마을에는 올해로 115 년의 역사를 가진 수만교회가 있다 .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이 감싸고 있는데 지금도 마을주민 대다수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 . 한편 이전에는 교회가 저수지로 수몰된 지역인 단지마을에 있었다 .
수몰되기 직전인 1964 년에 교회사람 열댓 명이 짐과 목재를 나르고 이곳에 다시 세운 것이다 .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창복 할아버지가 상황을 설명했다 . “ 수몰되기 전에는 교회 사람이 40~50 명 정도 있었는데 다들 딴 곳으로 가서 사람이 줄었죠 .
그래서 열댓 명 정도 남았는데 그 사람들끼리 소릅길 ( 오솔길 ) 따라서 지게에다 짐 싣고 옮겼어요 . 그땐 함석집으로 교회를 지었고 나중에 다시 고쳐지었죠 .” 교회에서 장로를 맡고 있는 이창복 할아버지는 교회 역사의 산증인이다 .
이사했을 당시 찍었던 기념사진을 보여주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읊었다 . 그중에는 마을에 있는 창복 할아버지와 백성녀 (100) 할머니도 있었다 . 멀리서 바라봐도 새하얀 교회 건물의 머릿돌은 1977 년 8 월 14 일에 세워졌다 . 현재 수만교회는 이현규 목사가 목회를 맡고 있다 .
주로 입석마을 , 단지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며 교인은 대략 30 명 정도이다 . 입석마을 강형기 이장도 수만교회에 다닌다 . “ 교회에 사람이 가장 많을 때는 62 명 정도였어요 .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가거나 나이 들어 돌아가셔서 사람이 줄었죠 .
예전에 종탑이 울릴 땐 , 일요일에 두 번 종이 울렸어요 . 그러면 밭일 하다가도 예배드리러 교회로 향하곤 했죠 .” □ 선돌 ( 입석 ) 마을은 101세 백성녀 어르신 최고령 마을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설입 立 돌석 石 이다 .
입구에서 마주보이는 산 중턱에 사람머리 형상 바위 ‘ 선돌 ’ 이 세워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입석마을 보다는 ‘ 선돌마을 ’ 이라고도 불린다 .
또한 예부터 주민들 사이에서 윗 마을은 ‘ 지향마을 ’, 아랫 마을은 ‘ 입석마을 ’ 로 나누어 칭했으나 행정구역상으로는 모두 입석마을로 되어있다 . 현재 마을 인구는 60~70 대가 가장 많고 최고령자는 101 세인 백성녀 어르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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