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집에 사는 '86살 소녀' 꽃집이라 불릴 정도로 화단 예뻐 “ 미우나 고우나 50 년 세월을 함께 살았네 .” 천주교해월리피정의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위치한 하얀 집에는 깔끔하고 소박한 마당이 있다 . 이곳에서 25 년째 살고 있다는 김영환 (86) 할머니를 만났다 .
나란히 놓여있는 화분과 화단의 꽃들이 눈에 띈다 . “ 내가 꽃을 좋아해서 어디 여행 갔다 오면 꽃씨를 하나씩 받아서 화단에 심었어 .” 다리목마을에서 할머니의 하얀 집은 유명한 꽃집이라고 했다 .
할머니는 고향 충남에서 서른한 살이 되었을 무렵 전주로 이사와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우연히 마을에 산 관리인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남편과 함께 다리목마을로 오게 됐다 . “ 남편이 죽고 중간에 아들 집에서 3 년 살다가 왔어 .
마을이 인심 좋고 살기가 좋아 .” 도란도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할머니는 문득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무남독녀 집안에서 태어난 딸이 혹여 외로울까 같은 동네 살던 꼬마를 의동생 삼으라던 부모님 말씀에 친하게 지내던 꼬마는 시간이 흘러 입대를 하게 되었다 .
“ 우리 영감님이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북에 가족들을 두고 월남을 했는데 마땅한 친구도 없어서 동생이랑 성이 같으니 친하게 지내던 모양이야 .” 휴가철이면 늘 함께 고향에 내려올 정도로 각별했던 두 사람은 휴가를 올 때면 빈손으로 오는 일이 없었다 .
“ 영감님은 이북사람이라 휴가를 오면 돈을 쓸데가 없으니까 동생네 집에 담요 , 비누 같은 거랑 돈도 가져다 줬지 . 바리바리 싸오니까 마을에서 그 군인 왔다면서 소문이 났어 .” 의동생의 친구였던 군인은 양계장 , 양돈장을 운영 할 만큼 많은 지원을 했지만 동물들이 전부 폐사했다 .
마지막으로 축사를 지원했지만 그마저도 두 마리만 남게 되었다 . 어느 날 봄 , 할머니가 집 앞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 의동생 아버지와 소문의 군인이었다 . 그 군인이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할머니를 내려다보고는 조심스레 옆으로 다가왔다 .
“ 빨래하는데 손수건이 하나 떠내려가잖아 . 그래서 그 사람건가보다 하고 얼른 건져서 두 손으로 물을 꼭 짜서줬지 . 근데 대뜸 내 손을 잡는 거야 . 놀래서 손을 뿌리치고 빨래 방망이도 내던지고 방으로 얼른 들어갔어 .
어머니가 그러더라고 나랑 결혼할 사람이라고 .” 할머니는 결혼할 상대가 손을 잡았던 그 군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의동생의 가족들은 미안함과 고마움에 좋은 짝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 . “ 처음 봤을 때 마음에 안 들었어 . 키도 크고 훤칠했는데 좀 무섭더라고 .
동생네 소 남은 두 마리 중 하나 팔아서 나랑 영감님이랑 결혼시켰어 .” 돌아갈 곳 없었던 남편과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생활은 안정되었고 자녀들 또한 잘 자라주었다 . 이북에 남겨둔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술을 달랬던 탓에 할머니를 힘들게도 했지만 미우나 고우나 같이 산 세월이 50 년이다 .
할머니가 둥글고 예쁘다며 모아둔 기러기 알들이다 할머니가 한참을 할아버지와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시더니 이제는 마당 소개를 해주신다며 손짓 하신다 . 화단 근처 화분 안에는 정체모를 하얀 알이 가득했다 . “ 기러기 알인데 아는 사람이 가끔 두어 개씩 가져와 . 이런 건 동그라니 바라만 봐도 예쁘잖아 .
알공예 하는 사람 있으면 주려고 속을 비워내고 껍질만 모았어 .” 말씀하시는 내내 할머니는 열여섯 소녀처럼 환히 웃었다 . 하얗고 둥근 기러기 알만큼 할머니의 미소도 참 예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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