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우리는 여러 ‘ 순간 ’ 을 경험하게 된다 . 어느 한 ‘ 순간 ’ 에 대한 인상과 경험은 때론 무척이나 강렬해서 누군가의 인생을 뒤바꿀만한 힘을 갖게 된다 . 임문자 할머니 (81) 인생에서 강렬했던 ‘ 순간 ’ 은 바로 이때가 아니었을까 .
78 세 되던 해 소양 면소재에서 우연히 먼 동네 동생을 만난 그 순간 , 할머니의 인생은 달라졌다 . 한글공부를 한다는 그 동생을 따라 임 할머니는 소양면사무소에서 하는 한글교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
그동안 ‘ 공부 하고 싶다 ’ 라는 생각은 늘 마음속에 있었지만 , 실천에 옮길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 우연히 동생을 만난 그 ‘ 순간 ’ 을 계기로 할머니는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 올해로 한글 공부를 시작한지 3 년째 . 임 할머니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시다 .
“ 예전에는 글 배우러 가고파도 어디 갈 시간이 있었간요 . 연필 한번 잡아볼 시간이 없었죠 . 시집와서 일하고 자식들 키우고 , 정신이 없었어요 .” 할머니가 늘 가방에 품고 다니시는 각종 필기도구. 국민학교 2 학년 재학 시절 해방이 되고 집안에 사정이 생기면서 졸업을 하지 못했다 .
그것이 할머니 평생의 한이 됐다 . “ 내가 학교를 못 다니니 동창생을 만나면 기가 죽드라고요 . 꿈을 꾸면 학교 댕기는 꿈을 꿨어요 .” 학교를 다니는 대신 할머니는 태우려고 모아놓은 폐지에서 손주가 다 쓰고 버린 노트를 주우셨다 . 그것이 할머니의 교과서였다 .
손주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훌륭한 선생이었다 . “ 글 배우고 싶다고 자녀들에게 말해본 일은 없어요 . 마음속으로만 생각했지 . 글을 모르니까 힘든 점이 많았어요 .
은행에 가서 돈을 뽑아야 는데 한글을 모르니 애가 터지드라구 .” 일주일에 두 차례 , 할머니는 집에서 20 여분간 걸어서 화심까지 , 그곳에서 버스를 10 여분간 타고 소양면사무소까지 간다 . 팔십 연세에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다 . “ 웬만하면 수업 안 빠져요 .
우리 애들도 나 핵교 다닌데니까 응원 해줘요 . 딸이 예쁜 책가방도 사줬어요 .” 임문자 할머니의 한글 연습 흔적 한글수업에서 처음 연필을 잡았을 때 , 그 손의 떨림을 할머니는 아직도 기억한다 . “ 처음에 연필을 잡고 쓰는데 손이 어찌나 떨리던지 . 지금도 손이 떨리긴 해요 .
한글교실을 나가니 옛날 국민학교 생각이 나서 벅차더라고 . 하는데 까지는 해보려구요 . 상원이 ( 손주 ) 가 쓰고 버린 한문 노트도 내가 몰래 빼놨어요 . 한글 공부하고 나서 한문 공부도 좀 해보려고 . 나 학교 계속 다녔으면 모범생이었을거야 .” 눈 덮인 임문자 할머니 댁.
할머니를 처음 뵌 날, 김장을 하기 전 배추를 절이고 계셨다. 아는 동생을 만나 한글교실로 향했던 그 ‘ 순간 ’ 할머니의 꿈은 이뤄졌다 . 동창생들을 부러워하며 꿈에서 다녔던 그 학교를 할머니는 지금 , 꿈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한다 .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