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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5.09.01

ㅇㅇ없이는 못살아

임동창 열혈 팬 임주하씨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5.09.01 09:17 조회 4,3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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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을 따라 완주로 귀촌한 임주하씨가 2015 임동창풍류페스티벌을 하루 앞둔 8월22일 임동창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동창이 좋아서 무작정 완주로 귀촌 ◇ 임동창 열혈 팬 임주하씨 10 년 전 공연보고 충격 “ 선생님 가까이 있고 싶어 ” 임주하 (34.

용진면 ) 씨는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이 좋아 귀촌했다 . 그는 “ 내 인생의 스승인 임동창 선생 곁에서 평생 제자가 되고 싶다 ” 고 말할 정도로 열혈 팬이다 . 임동창 선생이 있는 곳에는 임주하씨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

IMG 8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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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월 22 일 구이면 모악산에서 열린 ‘2015 임동창 풍류 두드림 Festival’ 에서도 주하씨는 스태프 복장을 한 채 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 ‘ 임동창 선생이 좋다 ’ 는 이유 하나로 고향 안산을 떠나 완주로 귀촌한 임씨 . 그는 언제부터 임동창 선생의 열혈 팬이 된 걸까 ?

주하씨가 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에 푹 빠지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 여 년 전 . 이십대 대학 시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던 중 선생의 공연을 우연히 보게 됐고 , 그 방송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

그는 “ 우리 장단을 피아노로 치고 설명하는데 ‘ 이 사람은 천재구나 ’ 라는 생각이 들었다 . 특히 방송 끝 부분에 선생님이 ‘ 공부가 멀었다 ’ 고 하신 말은 가히 충격이었다 ” 고 말했다 . 방송을 본 다음 날 주하씨는 바로 선생의 음반을 샀다 .

인터넷을 뒤지고 , 주변에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수소문도 했다 . 음반은 물론 , 악보와 임동창 선생이 추천한 책 등을 하나둘 모았다 . 그것들이 지금 그의 집 한 곳을 가득 메우고 있다 . 그는 “ 모두가 소중하지만 , 그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선생님의 악보 ” 라고 말했다 .

주하씨가 31 살 되던 해 , 인터넷을 통해 운 좋게 임동창 선생이 거처하는 곳을 알아낼 수 있었다 . “ 무작정 전화를 걸어 ‘ 공연을 보고 싶다 ’ 고 말했더니 저 같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신선해하시더군요 .

나중에 선생님께서 저를 음반 녹음실에 초대 하셨어요 .” 10 여 년의 짝사랑 끝에 직접 만나게 된 순간 , 그 기분은 지금도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 임동창 선생이 완주에 ‘ 임동창 풍류학교 ’ 의 문을 열었을 때 임씨도 결정했다 . 완주로 내려가기로 말이다 .

그는 “ 선생님 가까이에서 보고 들으며 배우고 싶었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 가족이나 친구 모두 나의 의사를 존중해줬고 지지해줬다 ” 고 말했다 . 쉼 없는 존경과 열렬한 지지를 통해 임동창 선생 역시 이제는 임주하씨를 ‘ 가족 ’ 처럼 여긴다고 .

임동창 선생은 그를 보며 “ 무언가에 푹 빠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 주하는 순박한 친구 ” 라고 말했다 . 주하씨의 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임동창 선생의 음악을 알 수 있도록 알리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 .

그는 “ 언젠가는 문하생으로 들어가고 싶다 ” 며 “ 선생님의 박물관을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꿈 ” 이라고 말했다 . 그는 “ 더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음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알리고 싶다 . 지금까지 모아온 자료는 나중에 선생님이 필요로 한다면 드릴 생각 ” 이라고 덧붙였다 .

현장 사진

임동창 열혈 팬 임주하씨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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