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놀이터에 담긴 의미 밀란 쿤데라의 작품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에서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 테레자와 그의 개 카레닌 , 그리고 토마시의 사랑에 대한 관계를 표현한 내용입니다 . 먼저 테레자와 그의 개 카레닌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입니다 .
테레자는 카레닌 ( 개 ) 에게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고 ,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습니다 . 하지만 그의 연인 토마스와의 관계는 애증을 넘어 집착에 이릅니다 .
테레자는 토마스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 하느님 , 맙소사 (...)” 를 토로합니다 . 그녀는 토마스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늘 불안하였고 , 스스로를 학대하고 집착함을 감정으로 표현하였던 것이었죠 .
쿤데라가 말한 “ 아무런 요구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원하기 때문이다 ” 감정의 표현은 사람과 사람 ,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며 ,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이렇듯 우리는 살아가면서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며 살고 있지만 , 감정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 삶은 어떤 한 사람이 살아온 경험과 다양한 지성의 집합체입니다 . 삶은 어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는 회귀의 과정입니다 .
어떤 결론에 닿기까지 그 사람이 겪어야했던 수많은 내적 갈등과 번뇌가 있습니다 . 외부요인과 맞닿은 수많은 연결고리와 논쟁거리는 지금의 우리 “ 감정 ” 을 만들어왔습니다 .
수많은 경험과 오류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우리 감정은 회고와 아쉬움을 남기더라도 표현을 시도해왔으나 , 감정이 이성을 앞설 수는 없었습니다 .
우리의 외면은 눈부신 기술발전 속에서 풍성함과 유용함에 이르렀으나 , 우리 내면은 “ 우리가 여전히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 툰데라 )” 혹은 “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 헤세 )”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
쿤데라는 “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 라고 말합니다 .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 내면은 “ 우리의 사랑 , 불안을 감춰야만 하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았고 , 오히려 그것은 진리 속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음 ” 을 이야기합니다 .
우리는 불안을 감추며 살아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는 고전 앞에 , 우리 자녀에게 무한 경쟁과 열등감 속에서 나의 감정을 감추는 것이 옳다 말할 수 있을까요 ?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은 기쁨과 슬픔 , 불안과 두려움도 자기 본래의 모습으로 자각하고 , 자기 자신이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 헤세 ). 누군가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한다면 , 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
따라서 감정훈련은 “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갈고 닦는 것 ” 이며 “ 더 큰 사회 속에서 정신과 마음을 조화시켜 총제적인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 ” 이라 볼 수 있습니다 . 특히 우리 아동과 청소년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고 표현하는 훈련이 매우 중요합니다 .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 매 순간 감정의 의미를 부여하고 물음을 던지며 , 매 순간을 사랑하는 자기다움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삶이 추구하는 방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얼마 전 종방 된 드라마 “ 그해 , 우리는 ” 에서 여주인공 ( 국연수 ) 의 독백이 앞으로 감정놀이터를 찾아와 치유될 우리 아이들의 표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 나 , 내 인생이 처음으로 좋아지기 시작했어 . 처음으로 내가 살아온 인생이 뚜렷하게 보여 . 그래서 좀 더 이렇게 살아보고 싶어 .
나는 내 삶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이었구나 싶어 .
그래서 좀 더 지금을 돌아보면서 살고 싶어 “ *감정놀이터 는 기쁨과 분노 , 두려움과 슬픔 등 아동 · 청소년이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 억눌린 감정을 쏟아내 위안과 위로를 받고 , 일상회복이 될 수 있도록 마음껏 표현하는 공간이다.
<본 기고문은 완주군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 홍문기 (완주군청 교육아동복지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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