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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공동체 · 2022.08.16

사람의 노래

21. 벌거벗은 소리

사람들이 함께 웃고 배우며 살아가는 공동체 현장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2.08.16 10:54 조회 2,39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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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노래  ㉒벌거벗은 소리 날이 더워지면서 사찰음악회 , 야외공연 등이 잦아지니 완주 인근에 오가는 지인들에게 연락이 온다 .

음악을 하나씩 짊어지고 오는 친구들이 낡은 나의 집 , 하나밖에 없는 방에 함께 머물며 앉은뱅이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하루 정도의 시간을 보내자니 내가 처음에 그랬듯이 무장해제가 되어 이런저런 상념들을 길게 풀어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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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에서조차 눈 뜨자마자 세수하고 커피 한 잔을 들고 악기를 풀어 어제 저녁에도 연주를 했음에도 손가락이 예전같지 않다며 짜증을 내는 모습이 불안해 보인다 .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거나 , 스스로의 상태를 파악하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거나 , 연주날 준비가 안 되어있다며 투덜거리지 말고 준비를 제대로 하지 그랬어 … 라며 평가하던 서울에서의 내 모습은 이제 없고 그들을 바라보는 안쓰러운 마음이 앞으로 나온다 .

결과를 철저히 개인의 능력치로 생각하던 예전의 내 모습을 그들에게서 보기때문인 것같다 . 이른 아침 집에서 울리는 연주자의 연습소리는 공연장에서 듣는 아름다움을 위한 음악과 다르다 .

스케일로 시작하여 원하는 음정과 아티큘레이션이 나올 때까지 쪼개고 끊어 반복을 거듭하고 , 피아노 반주와 형형색색의 드레스 , 눈이 부신 조명과 울림이 좋은 음향을 다 벗겨낸 벌거벗은 연주자의 소리이다 .

동네 할머니도 아침 동이 트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어제 생각해 놓은 일을 하기위해 밭으로 힘든 발걸음을 옮긴다 . 마치 어제 아무일도 안 한듯 매일매일 새롭게 차오르는 다음 일을 하러 가는 벌거벗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 도시에서 온 친구들이 내뱉는 이야기가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스스로 한껏 높여 잡은 기준치에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인생을 살고 있는지 , 그리고 그 이면에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자격지심 , 그리고 목숨 바쳐 사랑하는 음악을 향한 수십 년의 짝사랑 밑에 숨기고 있던 상처가 조용한 완주 허름한 집에 와서 겨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

초복이라고 뒷집 할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녹두와 토종닭으로 죽을 끓이셨단다 . 어제부터 커피와 콜라만 마셨다는 친구가 대접에 담긴 닭죽을 다 비워낸다 . 워낙이도 양이 참 적은 친구는 이런 맛은 처음이라며 할머니의 투명하고 노란빛이 숨겨진 갈색 장아찌와 열무김치도 열심히 집어 먹는다 .

할머니의 밥을 먹고 음식이 혀에서 끝나지 않고 나를 만드는 느낌을 처음 몸으로 느꼈다는 내 말이 이제 이해가 된다며 느리지만 밥상 구석구석 수저를 움직이는 모습이 참 예쁘다 .

우리가 음악을 잘 하지 않아도 , 우리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전시키지 않고 세상이 원하는 만큼 이루어낸 것이 없다 해도 , 인사 잘 하는 마을 큰애기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리고 날 더운 여름에 먼 곳에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부녀회장님이 마을 대표로 직접 골라온 세상 맛난 토종닭을 얻어 정성껏 끓인 할머니의 초복 닭죽을 먹을 수 있는 귀한 사람인 것이다 .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잘 하고 있는지 , 기준점 없이 허공에 뜬 손에 닿지 않는 자신만의 기준치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

사람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들이 마루에 켜켜이 쌓이는 것을 보며 여기 완주 고산의 허름한 구옥에서 그랬듯이 돌아가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고 대견한 자신을 보고 조금 더 평온한 마음 갖기를 간절히 바란다 . 김민경 (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현장 사진

21. 벌거벗은 소리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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