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돌에서 고정관념, 결핍과 고난을 찾다 조소작가 이창훈 씨 조소는 깎는 조각과 붙이는 소조를 포괄하는 미술 장르다 . 이창훈 씨는 조소 작가다 . 그의 작업 재료는 돌이다 .
“ 대학교 2 학년 테라코타 수업시간에 흙 판을 만들어서 논바닥처럼 갈라지는 형태의 작업을 했는데 그게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 당시 수업 주제가 시를 표현해보는 것이었어요 .
저는 시 대신 김윤아의 노래 ‘ 야상곡 ’ 을 선택했는데 그 가사를 스케치로 구상하는 과정에서 말라서 갈라진 바닥에 꽃이 있는 이미지가 그려지더라고요 .
그때 갈라지는 흙 모양에서 선과 면을 보았고 그 정적인 느낌에 매료됐던 것 같아요 .” 4 학년이 된 이창훈 작가는 졸업 작품을 고민하다 2 학년 때의 경험을 떠올렸고 당시 작업을 재해석해보기로 하는데 돌이 깨질 때의 형태가 흙이 갈라지는 모양과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
이때부터 돌과 그의 인연이 시작된다 . 그가 처음 갈라진 돌에서 본 건 ‘ 고정관념 ’ 이었다 . 지금은 ‘ 결핍과 고난 ’ 을 보고 있다 . 때때로 예술가로서 잘 하고 있는 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잘 견뎌내고 있다 .
그는 2016 년 첫 개인전 ‘ 틈 ’ 이후 지금까지 다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 현재 전북대학교 미술대학 조소전공 동문 3 명과 함께 완주에서 공방 ‘ 날맹이 스튜디오 ’ 를 운영 중이다 . 날맹이는 전라도 방언으로 산봉우리다 .
어떻게 전업작가가 되었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만들고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 고등학교 때 미술선생님이 그걸 알고 일반 미술학원이 아닌 조소 학원을 추천해주셨어요 . 그때 조소를 알게 되었죠 . 대학전공도 조소를 택했는데 당시만 해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택했고 먹고 사는 건 다른 것을 통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 그랬는데 대학교와 대학원을 거치면서 이 작업활동이 너무 만족스러운 거예요 . 거기서 오는 보람이나 성취감이 대단했죠 . 그래서 전업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작품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죠 처음에는 고정관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갈라진 땅의 모습과 차가운 철 틀이 마치 우리의 현실과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
현실에서 생겨난 관념과 관습이 고정관념이 된다는 생각을 했고 첫 번째와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그걸 깨뜨리기 위한 노력을 갈라진 돌에 빗대 작품화했죠 . 근데 이게 잘 전달이 안 되더라고요 . 저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되다 보니까 나중에는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
좀 직관적으로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가뭄이 왔을 때 논바닥이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니까 가뭄과 메마름의 이야기로 메시지를 다시 구성해보자고 생각했죠 . 지금은 갈라짐이라는 형태 안에서 빈곤 , 결핍 , 고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고정관념이라는 주제는 사라진 건가요 흙이 갈라지거나 돌이 깨져 있는 형상을 처음에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껍질을 벗어버리는 개념으로 바라봤던 걸 지금은 메마름 , 결핍 , 고난으로 보고 있는 것이죠 . 그런데 그 또한 깨뜨려야 할 고정관념일 수 있어요 .
변했다고 볼 수 있지만 처음 고민했던 주제가 사라진 건 아닌 것 같아요 . 관객들은 제 작품에서 고정관념을 볼 수도 , 빈곤과 결핍을 볼 수도 있습니다 . 그래도 됩니다 . 무엇을 보던 그건 관객의 몫이니까요 . 작업에는 주로 어떤 돌을 씁니까 첫 개인전 때는 화강암의 일종인 마천석을 썼어요 .
오석이라는 까만 돌이 있는데 입자가 곱고 때리면 유리처럼 맑고 얇은 소리가 나요 . 그런데 이게 좀 비싸요 . 마천석은 그 대체품이었던 거죠 . 건물 외장재로 많이 쓰이는데 오석만큼이나 까맣고 입자가 고급스러운 돌입니다 . 지금은 대리석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대리석은 조금 더 비싸지만 경도가 화강암에 비해 낮아서 작업하기가 수월합니다 . 돌을 가공하면서 몸이 받는 충격도 덜하고요 . 가공하다 돌이 제멋대로 깨지면 어떻게 하죠 저는 재료 고유의 성질을 이용하고 싶을 때는 스케치 없이 돌을 깨서 작업하곤 합니다 .
그래서 돌을 깼는데 스케치한 것과 다른 금이나 형태로 나왔을 때 , 그게 마음에 들면 그대로 사용하고 마음에 안 들면 접착제로 다시 붙여 활용합니다 .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런 우연성을 가미한 작업도 많이 있습니다 .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금속 조각이나 흙 작업 , 목 조각 등 분야마다 그 과정이 세밀하게는 다르지만 대부분 에스키스라는 스케치를 먼저 해요 .
이후 실험적인 작품이나 처음 하는 작업일 때는 기법에 대한 실험을 좀 하고 작업에 들어가는데 그게 아니고 일반적으로 해왔던 작업은 실험까지는 안 하고 그냥 에스키스 스케치하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죠 . 작업 전 실험은 재료의 물성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
이 과정을 통해 소품 작업을 하고 그다음에 본 작업으로 넘어가는 거죠 . 에스키스라고 하면 보통 스케치를 이야기하는 데 조소는 소품을 만드는 과정도 에스키스라고 합니다 . 정리하면 평면적인 에스키스 , 재료 물성 실험 , 입체 에스키스 , 본 작업 순으로 진행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
특별히 마음 가는 작품이 있습니까 최근에 했던 작업이 마음에 들어요 . 4 회 개인전 ‘ 인류한기 ’ 를 교동미술관에서 열었는데 공연 예술인들이 그 작품을 창작극으로 재해석했어요 . 저는 그 공연 영상이랑 이야기를 다시 전시장으로 끌어와 ‘ 새로 고침 : 여생 ’ 이라는 5 회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
그 작업이 전체적으로 가장 마음에 듭니다 . 색다른 시도가 좋았고 그만큼 성취감과 보람도 컸던 것 같아요 . 어려운 시기도 있었겠죠 4 회 개인전 전에 회의감이 강하게 왔어요 . 요즘 말로 현타라고 하죠 ?
제가 생계를 위해 문화기획 일을 하고 있는데 기획자가 되고 보니 ‘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예술인가 ’ 하는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 현대미술이라는 게 워낙 광범위한 데다가 활동하는 작가들도 많잖아요 . 그 속에서 내가 하는 게 과연 남들에게 예술로 불릴만한 활동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 거죠 .
취미생인지 , 에술인인지 모르겠더라고요 . 그런데 4 회 전시를 하고 그걸 다른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주고 , 저는 또 그걸 받아서 5 회 전시로 잇고 하는 과정에서 그 마음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누군가는 내 작품을 예술로 바라보고 있구나하는 생각과 성취감이 다시 버틸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아요 .
어떨 때 자신이 예술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까 작품 하나 끝났을 때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뭔가 멋진 걸 만들어 낼 때 , 그리고 그게 전시가 될 때 그 순간순간 예술인으로의 자각과 성취감을 느껴요 .
무엇보다 내 작품을 찾아주는 기획자가 있을 때 , 즉 전시에 초대받을 때 확실히 내가 예술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죠 . 끝으로 한 말씀 미술 시장은 항상 어렵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도 작업하는 예술인이 있고 , 작품을 보러 와주시는 관객이 계시잖아요 .
저도 좋은 작품 , 좋은 전시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 그리고 예술인들이 돈 걱정 덜 하며 작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문화기획자로서 저의 목표입니다 . 예술가로 , 또 기획자로 좋은 모습 보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 본 지면은 완주문화재단의 '완주예술발굴 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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