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성차별주의와 마주하다 문화다양성 무지개다리/ 4편 일단, 페미니즘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사람들이 공포나 환상에 비롯하지 않은 해답을 얻기 바랐다.
사람들이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라는 간결한 정의를 읽고 또 읽어서 그 의미를 깨우치기를 바랐다.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문학동네, 2017) 중에서-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의 말처럼 사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운동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양한 범주와 갈래의 흐름으로 인해 이해가 쉽지 않은 만큼 오해도, 이견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뉴스에는 연일 관련한 이슈가 터져 나오고, 페미니즘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여성과 남성뿐 아니라 세대와 계층 간 서로에 대한 혐오와 오해는 갈수록 깊어져 가는 것만 같다. □ 일단, 페미니즘!
매주 토요일 고산면 고산미소시장 내 ‘널리널리 홍홍’에서는 사람들이 소리 내어 페미니즘 책을 읽는다. 모임명은 이름하여 <일단, 페미니즘>. 이 모임은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꾸려졌다. 이들의 낭독을 듣고 있으면 흡사 학창시절 문학시간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또박또박, 각자의 호흡대로 차분히 책을 읽어나간다. 모임의 이끔이 통통(고산·34)은 “페미니즘은 제 안에서 먼저, ‘일단’ 해결해야 할 주제라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모이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완주문화재단의 무지개다리 사업과 연계하여 지금의 정식모임으로 확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3명이서 시작한 작은 모임은 단체채팅방 인원까지 합하면 모두 14명이 함께한다. 실제 꾸준히 읽기 모임을 지속하는 인원은 남녀 5~7명 정도.
모임은 매주 열리지만 참여자들은 각자의 시간과 사정대로 자유롭게 오간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성문화 연구모임 ‘도란스’의 기획 총서 4권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미투의 정치학』)과 『남자들은 자꾸 날 가르치려든다』를 읽었고, 지금은 『외롭지 않을 권리』를 읽고 있다.
<일단, 페미니즘>을 꾸준히 이끌어가는 힘은 바로 ‘낭독’이다. 지금까지 함께 6권의 책을 읽었다. <일단, 페미니즘>을 꾸준히 이끌어가는 힘은 바로 ‘낭독’이다. 낭독을 하고 있으면 페미니즘이 세상에 울려 퍼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시간을 따로 내서 책을 읽지 않아도 모임에 와서 낭독하면 되니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점이다. 함께 읽다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나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지체 없이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일단 한 번 모였다 하면 시작된 수다는 좀처럼 멈추질 않는다.
보통 2~3시간 정도 진행하지만 모임 최장 기록은 장장 7시간.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들은 흘러넘쳐 다들 헤어지기 아쉬워 한다는 후문이다. 또한 이들은 낭독 외에도 강연, 상연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페미니즘과 만났다. 일단, 페미니즘의 모임 멤버들이 모여 <파도 위의 여성들>이란 영화를 보고 있다.
□ 페미니즘, 알을 깨뜨리는 일 <일단, 페미니즘>을 통해 모임원들은 책과, 서로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자신의 세계를 부수고 또 부순다. 심술(고산·44)은 “도란서 총서 4권이 인상 깊은데 아마 혼자 읽었으면 못 읽었을 거다.
읽어나간 책들은 찌개백반처럼 내 삶에 뼈가 되고 살이 됐다”면서 “뼛속까지 깊이 박혀있는 습이란 것이 있는데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기존 삶의 틀을 시나브로 깨가고 있는 중이다. 깼다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과정에 있다.
막연했는데 총서를 읽으면서 어디를, 어떤 부분을 깨야할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며 웃었다. 이미 내면화된 성차별주의적 사고를 또렷이 바라보고 뜯어고쳐야만 하는 일이 분명 쉽지만은 않다. 이는 비단 남성에게만 국한된 말은 아니다.
홍홍(전주·41)의 경우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전에는 할 말 없으니까 ‘오늘 예쁘네, 혹은 어디어디가 예쁘다’거나 ‘남자(여자)친구는 왜 없어?’ 등의 말을 실례가 되는 줄 모르고 했던 적도 있다. 끊임없이 공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야옹(고산·40)은 곧바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라는 책을 추천했다. 페미니즘을 통해 어둠 속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같던 삶에 등불을 찾고, 언어를 찾고, 편안해짐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
반면 기존의 가치관을 깨부수고, 자기 안에서 계속해서 균열이 일어나고, 가졌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누군가도 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다 보면 불편함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 진정한 ‘우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 “무조건 좋다고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서로 싸우고 부딪혀도 화해하고,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자 관계라고 생각해요. 나와 맞지 않는 다고 마음 통하는 사람끼리만 지내는 것은 안하고 싶어요.”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니고 선의는 있는 사람인데, 혹은 앞으로도 자주 봐야 할 사람이라는 이유로 일상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마주해도 그냥 슬쩍 넘어가게 되는 일이 많다.
야옹은 “결과 적으로 그 사람의 행동이 바뀌지 않더라도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해주는 행위 자체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며 “억울하다거나 분노하는 개인적인 감정을 전달하지 않으면서 담백하게 대화하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내 안의 언어를 잘 전달하고 그 사람과 더 많이, 오래 얘기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일단, 페미니즘 멤버들이 각자 책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일단, 페미니즘>으로 모임원들은 자신의 변화를 느낀다.
무엇이 폭력인지 알게 되었고, 각자의 언어를 찾아가고, 그 언어를 퍼트릴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누군가는 페미니즘을 통해 진짜 관계를 얻기도 했다. 아직도 페미니즘에 대해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2개월 차 새내기 멤버 난다(전주·50)가 전한 말처럼 일단,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집에 페미니즘 책은 쌓여있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드는데 ‘일단’이 안됐어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 일단 발이라도 담그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모임에 계속 나오고 있는데 어떤 이야기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요.
저에게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귀중한 모임입니다.” * 기사는 모임에서 불리는 별명으로 작성했습니다. ※완주문화재단 무지개다리 사업= 완주문화재단은 2020년 무지개다리 사업을 통해 ‘다름의 가치’에 대해 이해하고 소통하며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완주문화재단이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무지개다리 사업은 지역주민과 다양한 문화주체가 문화예술을 통해 서로의 문화의 다름과 차이를 이해하고 공동체사회에서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을 찾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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