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에 예술로 스몄다 ④ 화산면 최미경 문화이장 완주 화산골의 작은 마을인 수락마을 . 이곳은 주민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었던 대표적인 문화소외지역이었다 . 지리적으로도 골짜기에 위치해 외부 강사들이 출장 오는 걸 꺼려하는 곳이기도 하다 .
2017 년부터 3 년간 문화이장 1 기로 활동한 최미경 (50) 씨는 지역에서 가장 절실했던 문화공간을 가꾸고 이곳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 그렇게 예술작가와 지역 어르신 , 아이들은 하나 되어 함께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
위_전시 '움, 정원이 되다' 오프닝 2018년 1, 2기 문화이장 위촉 농촌 빈집에서 문화공간으로 최미경 씨는 20 년 전부터 전주에서 케이크 디자이너로 일했고 이후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제과 · 제빵 교육을 해왔다 .
2017 년에 그는 가까운 지역인 완주로 귀촌을 결정했고 낡은 집터를 사들였다 . 그곳은 그의 개인 작업장이 되었고 곧 모두의 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 개인 작업장에서 열린 공간으로 변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제가 이곳에 귀촌을 하고 , 문화이장에 선정되고 , 문화공간을 꾸렸던 과정이 거의 한 번에 이뤄졌어요 . 우연히 문화재단을 알게 돼서 문화이장 1 기로 활동했는데 그때 문화의 필요성과 가치를 배웠거든요 .
이 시골에서는 일단 공간이 필요하니까 한번 꾸며보기로 했던 거죠 .” 그가 귀촌한 화산면에는 화산골작은도서관 외에는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 또한 책 읽는 공간인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소통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다 .
이 때문에 미경 씨를 비롯한 귀촌인들과 지역 주민들의 교류는 단절되고 고립되었다 . 이에 미경 씨는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거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 “ 매입한 헌 집이 2 년 동안 사용을 안 했던 곳이라 곳곳에 문제가 많았어요 .
가운데는 물이 새고 곰팡이도 나고 그랬는데 계속 고치고 또 고쳤죠 . 혼자서 작업하는 공간은 크지 않아도 되니까 작업장을 쓰고도 남는 공간은 같이 쓸 수 있도록 한 거예요 .” 그렇게 미경 씨는 농촌의 빈집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
이곳은 집터에 남아있었던 옛 빨래터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내 ‘ 문화아지트 빨래터 ’ 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 문화아지트 빨래터는 주민들의 쉼터이자 사랑방이 되었고 2018 년 10 월에 화산초등학교 아이들을 초대한 ‘ 할로윈데이 파티 ’ 는 문화활동의 시작점이 되었다 .
이후 2019 년 초에는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동체 사업 ‘ 메이드 인 공공 ’ 을 통해 주민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이때 외부 강사를 초청하기도 했고 화산면에 있는 예술인들이 수업을 열기도 했다 . 지역 주민들이 수업을 이끄는 강사가 되거나 참여자가 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 예전엔 몰랐는데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가까운 곳에서도 재능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 지속적으로 소통이 이뤄지다 보니까 지역에 숨어있던 인적자원을 발굴할 수 있었던 거죠 .
그때 화산면 주민분들이 공예나 민화 수업을 진행했어요 .”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가치 2017 년부터 3 년간 최미경 씨는 완주문화재단 ‘ 문화이장 ’ 으로 지역문화 매개자 역할을 해왔다 . 당시 문화이장 사업은 1 기로 처음 시행된 거라 우여곡절도 있었다 .
재단과 완주군 13 개 읍면의 문화이장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체계와 틀을 잡았고 문화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 그는 이 과정에서 문화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예전에는 문화라는 건 돈 많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 이런 시골 환경에서는 꿈도 못 꾸는 거라고 여겼죠 .
근데 문화이장 교육 때 문화는 누구나 향유할 수 있고 실생활에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단 걸 알게 됐어요 . 사람들과 문화로 연결될 수 있고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사업을 추진하는 데 더 힘이 생겼죠 .” 이에 최미경 씨는 다양한 사업을 연계시키며 문화사업을 이끌어나갔다 .
지역 주민들이 일상에서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한 것이다 . 그중에서도 그는 2019 년 , 2020 년 ‘ 완주 한달살기 ’ 정책을 활용했다 . 이 정책을 통해 예술작가들은 지역에 머무르면서 원데이클래스를 운영하는 등 주민들과 문화로 소통했다 .
마을 주민들은 처음엔 어색해하다가도 금세 마음의 문을 열고 ‘ 문화아지트 빨래터 ’ 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 “ 처음엔 어르신들이 ‘ 여기가 뭐하는 곳이냐 ’ 며 궁금해하면서도 참여는 잘 안 했어요 . 그래서 초복 , 중복 , 말복에 닭 잡아서 마을 사람들 초대해서 같이 먹으면서 친해졌어요 .
이곳이 언제든지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라는 걸 홍보하고 싶었거든요 .” 낯설어했던 주민들도 점차 적극적인 태도로 변했다 . 요즘 이들은 미경 씨에게 먼저 다가와 이번 달 문화프로그램은 언제 진행되는지 묻곤 한다 .
어느덧 주민들은 한 공간에 모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무언가를 배우는 일이 익숙해진 것이다 . 시골빵집 , 과감한 도전 지난 5 년간 ‘ 문화아지트 빨래터 ’ 는 여러 방면에서 성공을 거뒀다 .
이곳은 주목적인 주민들의 문화향유를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2020 년 제 7 회 행복농촌만들기 콘테스트 농촌빈집 유휴시설활용 우수사례로 전라북도대회 최우수상을 받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 하지만 개인이 공간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도 뒤따랐다 .
사업이 종료된 후에는 공간유지비용을 혼자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 “ 사실 문화사업은 거의 봉사에 가까워요 . 공간 운영자는 원데이클래스의 강사로 참여할 수도 없어서 제과 · 제빵 수업을 열고 싶어도 못 했죠 . 그래서 제가 공간은 공간대로 운영하고 수업은 외부로 다녀야만 했어요 .
근데 ‘ 완주 한달살기 ’ 사업을 끝내고 나서 공과금이라던지 혼자서 감당해야 할 게 많아져서 빵집을 차려보자고 계획하게 된 거예요 .” 미경 씨가 빵집을 차리게 된 것에 경제적인 이유만 있는 건 아니다 . 오히려 외딴 시골에 빵집을 운영한다는 건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
그럼에도 그가 빵집을 계획했던 건 그의 오랜 꿈이었기 때문이다 . 또한 이는 더 이상 외부로 나가지 않고 한곳에 머무를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 그는 지난해 3 월 ‘ 화산애빵긋 ’ 이라는 빵집을 열었고 같은 해 9 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었다 . 빵집은 우려와 달리 금세 입소문이 났다 .
화산애빵긋 대표이자 지역의 문화매개자 역할을 지속해오는 그의 계획이 궁금했다 . “ 지금도 문화아지트 빨래터는 문화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어요 . 요즘엔 화산면 청년이장과 지역 청년들이 이곳에 모여 원예도 하고 쿠킹클래스도 해요 .
앞으로도 이곳이 주민들의 놀이터가 되고 예술인들도 맘껏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 [화산애빵긋] 주소 완주군 화산면 화산로 702 문의 010-5831-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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