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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공동체 · 2022.05.19

문화다양성 무지개다리

김화순 용진읍 문화이장

사람들이 함께 웃고 배우며 살아가는 공동체 현장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2.05.19 14:13 조회 2,4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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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③ 용진읍 김화순 문화이장 용진 효천마을의 안쪽 길을 따라가다 보면 2 층짜리 하얀 집이 나온다 . 마당에 만개한 봄꽃들이 화사하게 반겨주는 곳이다 . 이곳은 용진읍 문화이장 김화순 (67) 씨가 운영하는 장애인그룹홈 ‘ 늘푸름그룹홈 ’ 이자 그의 집이다 .

40 여 년 동안 장애인 관련 활동가 , 돌봄 시설 운영자로 일해 온 그는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엄마의 마음으로 시작한 활동 김화순 씨에게는 자녀가 둘 있다 . 그중 큰딸 유연주 (44) 씨는 발달장애인이다 .

이장3
이장3

딸 연주 씨는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고 다른 장애도 가진 중복장애인이었기에 일상생활을 하는데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 그러다 학교에 다닐 무렵 다양한 문제에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 약 30 년 전에는 장애아동을 위한 교육제도나 지원책이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에 사회적으로 뿌리박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인 김 씨가 나서게 된 것이다 . “1979 년도부터 우리집에서 장애인 부모 모임을 시작했어요 . 신체적으로 불편함을 겪는 건 병원에 가면 해결됐지만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나 돌봄 등에 대한 어려움은 혼자서 극복하기 어려웠거든요 .

장애아 부모들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서로 힘을 얻기 위해서 모임을 마련했던 거예요 .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던 거죠 .” 그렇게 40 가정의 부모가 70~80 명가량 모였던 모임은 ‘ 전북장애인부모회 ’ 의 시초가 되었다 .

1986 년 전북장애인부모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었고 그 다음해 특수교사와 함께 재활치료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 별 다른 공간이 없었기에 이 모든 것은 김 씨의 집에서 이뤄졌다 . 이후 그의 딸인 연주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디뎌야할 무렵에 또 한 번 고비가 찾아왔다 .

발달장애인은 성인이 되어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 딸이 학교를 다닐 땐 학교에 보낼 수 있었는데 성인이 되고나니 더 막막해졌어요 . 하루 종일 가족이 옆에서 돌봐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이건 모든 장애인 부모가 겪는 일이거든요 .

그래서 당시 전주에 살던 아파트에서 그룹홈을 운영하게 됐어요 .” 도심 속 아파트에서 그룹홈을 운영한다는 것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 당시 김 씨는 33 평 남짓한 곳에서 6 명의 발달장애인을 돌보면서 민원의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

날이 갈수록 주변 이웃들에게 소음 문제로 신고를 당하기 일쑤였고 이때 김 씨는 이사를 결심하게 된다 . 이에 2010 년 10 월에 현 위치인 용진 효천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 당시 쫓겨나듯 어쩔 수 없이 결정한 선택이었지만 김 씨는 이 선택을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로 꼽는다 .

여전히 장애인 시설은 기피대상이기에 정착할 곳을 찾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 “ 당시 이 주변에 거의 논만 있고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 또 마을 어르신들도 장애인이 들어온다고 해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주셨고요 .

저는 이곳에 이사 온 것을 축복으로 생각해요 .” 문화이장 1차 워크숍 기획자로서 진심을 다하다 완주에서 생활한지 12 년차 된 그는 늘푸름그룹홈 운영 외에도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발을 뻗어나가고 있다 .

김 씨는 마을에서 부녀회장을 8 년째 맡고 있으며 2020 년도 완주문화재단 문화이장 3 기로 발탁되었다 . 또한 2020 년 8 월 용진읍 ‘ 용꿈작은도서관 ’ 을 위탁받아서 운영하고 있다 .

그가 지역문화의 매개자로서 활동을 이어가는 건 지역에 있는 장애인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경험을 넓혀주기 위함이다 . 그는 자식과도 같은 아이들이 하나라도 더 얻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 2020 년에는 용진읍에 거주하는 성인장애인과 함께 전주한옥마을로 나들이를 떠났다 .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 프로그램 일정표에도 그의 섬세한 애정이 묻어났다 . “ 장애인들은 어딜 가든지 큰 맘 먹고 나가야만 해요 . 그 보호자도 마찬가지고요 . 그래서 자연스럽게 집이나 실내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바깥 구경하는 게 어려워지죠 .

문화이장 첫 해에 전주한옥마을로 나갔던 것도 아이들을 위해서였어요 . 그때 장애인 한 명마다 자원봉사자 한 명씩 일대일로 옆에 붙어서 한복입고 돌아다녔어요 . 제일 비싼 떡갈비도 먹었고요 .( 웃음 )” 그동안 수많은 차별을 경험한 장애인들이 이날만큼은 특별한 대우를 받길 바랐던 것이었다 .

이렇듯 그는 장애인들이 다양한 공간에서 더 많은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길 바란다 . 이에 지난해 용꿈작은도서관에서는 3 주간 성인장애인 15 명을 대상으로 도서관의 역할을 소개하고 책 읽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

그동안 그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부모나 보호자가 동행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것에도 그의 배려가 담겨 있었다 . “ 우리 아이만 봐도 그래요 . 장애인들도 부모님 없이 자유시간을 만끽하는 걸 좋아해요 . 왜냐면 아이의 특성을 부모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아이들이 부모 눈치를 살피게 되거든요 .

그래서 부모를 동행하지 않는 걸로 기획을 했고 대신 일대일로 자원봉사자가 옆을 지켰어요 .” 활동계획 공유테이블 우리 곁에 은연한 차별들 지난 40 여 년간 장애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힘써왔던 그에게도 최근 고민이 생겼다 .

그의 곁에 있는 장애인들이 밖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쉼터 안에서 차별을 받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검열하기 시작한 것이다 . 그 고민은 완주문화재단 완주문화다양성발굴단 ‘ 소수다 ’ 에 참여하면서부터 더 깊어졌다 . “ 소수다 활동하면서 항상 깜짝 놀랐어요 .

참여자들끼리 항상 차별을 주제로 교육을 받고 토론했는데 어떻게 보면 제가 우리 아이들한테 가장 많이 차별했더라고요 . 당연히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더 잘 한다고 생각해서 제지시켰던 것들이 많았거든요 .

‘ 내가 더 많이 안다 ’ 고 여기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깔려있었던 거였죠 .” ‘ 아는 만큼 보인다 ’ 는 말처럼 김 씨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 몰랐을 때는 그냥 넘어갔던 것들도 이제는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 것이다 . 말 한 마디 , 행동 하나에도 더욱이 조심하게 됐다 .

또 그동안은 주로 장애인과 관련된 것들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젠 그 관심사도 넓어졌다 . “ 원래 저는 장애인이 아닌 다른 소수자에 대한 내용들은 남 얘기로 들렸어요 . 그전에는 다문화에도 관심이 적었고요 . 근데 아들이 태국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거기서 며느리를 만났더라고요 .

소수자나 차별에 대한 공부를 안 했으면 이걸 이해하기 어려웠을텐데 다행인 거죠 .” 밖으로 드러나는 차별도 있지만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차별이 은연하게 깔려있다 . 이를테면 장애를 그 자체로 보지 않고 해석하는 것이 장애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이다 .

장애인의 상태를 ‘ 불편한 것 ’ 이라 판단하고 ‘ 불쌍한 존재 ’ 로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 2007 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지만 장애인의 현실은 아직 나아지지 않았다 . 이에 김 씨도 의견을 보탰다 . “40 년 전만해도 ‘ 장애인 ’ 이란 단어도 , 인식 자체도 없었어요 .

그냥 ‘ 병신 ’ 이나 ‘ 멍청이 ’ 라고 불렀으니까요 . 물론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제도도 생겨났고 지원받기 위해 문을 두드릴 곳이 생겼으니 나아졌죠 . 하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이 인정 못 받고 차별받는 게 당연해요 . 우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에요 .

잘 해주려고 하지 않아도 되니까 장애인들을 아무렇지 않게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면 좋겠어요 .” 문화이장 4기 공통활동

현장 사진

김화순 용진읍 문화이장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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