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함께하기 위한 – 한돌의 [ 홀로아리랑 ] 저 멀리 동해 바다 외로운 섬 /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 가는데 /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 타고 떠나라 / 한라산 제주에서 배 타고 간다 / 가다가 홀로 섬에 닻을 내리고 /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해보자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촛불거리에서 널리 울려 퍼졌던 통일의 노래입니다 .
상실과 애틋한 그리움의 노래가 변혁을 염원하는 함성과 뒤섞였습니다 . “ 나는 촛불이 어둠을 밝히는 세상보다 어둠이 촛불을 빛나게 해주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세상이 아닌 , 빛과 어둠이 함께하는 그런 세상에서 말이다 .” 이 곡을 만든 사람은 촛불광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이런 소망을 키워왔던 사람입니다 . 그래서 다소곳이 속삭이는 듯한 차분한 노래들을 만들어왔습니다 . 통일을 바라지만 강요의 외침은 싫어합니다 .
민주주의를 꿈꾸지만 구호나 선언이 아니라 소박한 전통 선율에 얹은 읊조림을 선호했습니다 . 한글을 많이 사랑하여 이름까지 ' 작은 돌의 역할 ' 을 뜻하는 ‘ 한돌 ’ 로 바꿨습니다 .
원래 서유석이 불렀던 이 노래는 조용필이 2005 년 평양공연에서 북측의 요청에 따라 앙코르 곡으로 불러 성황리에 콘서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 방송 예능 프로그램 [1 박 2 일 ] 의 ‘ 독도 편 ’ 과 ‘ 백두산 편 ’ 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인지도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
“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소리입니다 . 어려웠던 시절 우리는 우리의 한을 아리랑으로 달래곤 했습니다 . 그러나 이번에 만든 홀로 아리랑에선 그 한을 뛰어넘어 희망으로 가자는 뜻을 담았습니다 .” “ 외롭다는 느낌을 주려고 홀로라는 말을 쓴 게 아닙니다 .
독도가 홀로 , 혼자서 노래를 부르면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로 붙인 거죠 .”( 한돌 ) 작곡가 한돌은 1976 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가 1979 년에 정식 가수로 데뷔합니다 .
1984 년 4 월에는 기획사 뮤직디자인을 설립해 신형원의 독집을 발매합니다 . 이때부터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데 신형원이 부른 [ 불씨 ] 와 [ 유리벽 ] 은 각 라디오 프로그램의 신청곡 1 위로 등극할 만큼 뜨거운 호응을 얻었습니다 .
1987 년에는 [ 개똥벌레 ] 와 [ 터 ], 1989 년에는 서유석 노래로 [ 홀로아리랑 ] 을 발표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 [ 홀로 아리랑 ] 은 한돌의 대표곡이자 통일을 상징하는 노래입니다 . 그는 진즉부터 한민족의 혼인 아리랑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
여기에는 실향민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 그는 한국전쟁 당시 1 · 4 후퇴 때 두 명의 형과 누나를 함경남도 영흥에 두고 월남한 그의 아버지가 남쪽에서 얻은 다섯 형제 중 둘째입니다 .
늘 북에 두고 온 자식들에게 미안함이 컸던 아버지는 그에게 “ 통일이 되면 북에 두고 온 형을 만나서 , 잠시 헤어진다고 생각했지 버린 것이 아니라고 전해 달라 ” 는 한 맺힌 유언을 남겼습니다 . 그런 애틋한 염원과 그리움이 이 노래의 뿌리일 것입니다 . 결국 우리 모두는 홀로입니다 .
홀로일 때 어떤 모습과 행동을 취하는 가가 사람됨의 궁극적 척도입니다 . 홀로 잘 설 수 있어야 함께 잘 화합할 수 있습니다 . 홀로 서있는 독도의 정체성이 바로 서야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정세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
갑자기 ‘ 독도는 우리 땅 !’ 을 외치지 못하는 자들이 늘어나는 요즘 이 노래 자주 되뇌며 스스로를 다잡아 볼 일입니다 . / 이종민 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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