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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4.06.21

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절절한 추모의 넉살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4.06.21 10:08 조회 4,05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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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한 추모의 넉살 김영동의 [ 멀리 있는 빛 ] 6 월 16 일 그대 제일에 / 나는 번번이 이유를 달고 가지 못했지 / 무덤이 있는 언덕으로 가던 / 좁은 잡초 길엔 풀꽃들이 그대로 지천으로 피어 있겠지 / 금년에도 나는 생시와 같이 그대를 만나러 / 풀꽃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아 / 대신에 산 아래 사는 / 아직도 정결하고 착한 누이에게 / 시집 한 권을 등기로 부쳤지 / 객초 ( 客草 ) 라는 몹쓸 책이지 / 상소리가 더러 나오는 한심한 글들이지 / 첫 페이지를 열면 / 그대에게 보낸 저녁 미사곡이 나오지 / 표지를 보면 그대는 저절로 웃음이 날 거야 / 나 같은 똥통이 사람 돼간다고 / 사뭇 반가워 할 거야 / 물에 빠진 사람이 적삼을 입은 채 / 허우적허우적 거리지 / 말이 그렇지 적삼이랑 어깨는 잠기고 / 모가지만 달랑 물위에 솟아나 있거든 / 머리칼은 겁먹어 오그라붙고 / 콧잔등엔 기름칠을 했는데 / 동공아래 파리똥만한 점도 찍었거든 / 국적 없는 도화사만 그리다가 / 요즈음 상투머리에 옷고름 / 댕기 무명치마 날 잡아 잡수 / 겹버선 신고 뛴다니까 / 유치한 단청 색깔로 / 붓의 힘을 뺀 제자 ( 題字 ) 보면 / 그대의 깊은 눈이 어떤 내색을 할지 / 나는 무덤에 못가는 멀쩡한 사지를 나무래고 / 침을 뱉고 송곳으로 구멍을 낸다우 / 간밤에는 바람소리를 듣고 / 이렇게 시든다우 / 꿈이 없어서 / 꿈조차 동이 나니까 / 냉수만 퍼마시니 촐랑대다 지레 눕지 / 머리맡에는 그대의 깊고 슬픈 시선이 / 나를 지켜주고 있더라도 그렇지 / 싹수가 노랗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어떠우 김영태 시인의 [ 멀리 있는 무덤 ] 입니다 .

이 시는 1968 년 6 월 16 일에 사망한 김수영 시인에 대한 추모시입니다 .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 라는 김수영 시인의 [ 거대한 뿌리 ] 를 떠올리게 됩니다 . 죽은 시인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

멀리 있는 빛
멀리 있는 빛

처음 제삿날에도 무덤을 찾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변명조로 시작합니다 . 무덤을 찾는 대신에 산 아래 사는 ‘ 정결하고 착한 ’ 김수영 누이에게 자신의 시집 한 권을 붙였다고 전합니다 . 그 시집 속에는 [ 김수영을 추모하는 저녁 미사곡 ] 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이 누이는 김수영 시인의 “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 ” 로 유명한 [ 누이야 장하고나 !] 에 등장하는 바로 그 누이입니다 . [ 멀리 있는 무덤 ] 후반에 이어지는 김영태 시인의 해학적 넉살은 이 “ 풍자가 아니면 해탈 ” 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

김수영의 ‘ 풀 ’ 과 자신의 [ 객초 ] 를 , 김수영의 ‘ 정결하고 착한 누이 ’ 와 자신의 너저분함을 대비시키는 넉살이 흥미롭습니다 . [ 멀리 있는 빛 ] 은 [ 멀리 있는 무덤 ] 에 김영동이 곡을 얹어 만든 독특한 창작국악곡입니다 . 감히 창작 국악의 전범이라 칭할 수 있는 수작입니다 .

작곡자 김영동의 머릿속에도 거대한 뿌리로서의 전통음악에 대한 자긍심과 믿음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 “ 국적 없는 도화사 ” 만 그리는 작금의 문화풍토에 대한 반발 혹은 반성도 있었을 것이고요 .

시 [ 멀리 있는 무덤 ] 이 독특한 이야기와 노래 형식으로 변환되면서 제목도 [ 멀리 있는 빛 ] 으로 바뀝니다 .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한 작곡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죽음조차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여 일종의 놀이로 제의화하고 있습니다 .

전공자답게 대금을 기가 막히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 여기에 양금 , 그리고 기타와 신디사이저가 배경 음악으로 받치며 목소리가 더해집니다 . 노래는 김영동 자신이 부르고 있습니다 .

한 시인을 추모하는 시를 음악 대본으로 삼아 우리 삶의 비극성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 등을 아련하면서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애도의 슬픔과 희극적 해학이 넘나드는 내용을 아니리와 창 그리고 대금연주를 곁들여 묘한 여운의 화음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 반복해서 들으시기를 권합니다 .

그렇게 한국음악의 묘미에 젖어보시기 바랍니다 . 해방과 몰입 , 긴장과 이완의 형식을 되풀이하는 이 곡을 들으면서 ' 자유 ' 를 외치던 시인 김수영의 휑하면서도 날카로운 눈초리도 떠올려보시고요 .

/ 이종민 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장 사진

절절한 추모의 넉살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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