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 존 레논의 [ 상상 ]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 / 해보면 쉬울 거야 / 우리 발아래 지옥도 없고 / 위에는 오직 하늘만 /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 모든 사람들을 상상해봐 , 아하 아 //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봐 / 어려운 일이 아냐 / 이를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이 없는 / 종교조차 없는 그런 곳 /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 모든 사람들을 상상해봐 , 유후 우 // 소유가 없는 삶을 상상해봐 / 잘 그려지지 않겠지 / 탐욕과 굶주림이 필요치 않고 / 오로지 동포애만이 존재하는 삶 / 오 세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 모든 사람들을 상상해봐 , 유후 우 // 날 몽상가라고 말할 수도 있어 /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야 / 그대도 언젠가 우리와 함께하길 바래 /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야 낭만은 ‘ 도라지 위스키 ’ 나 ‘ 옛날식 다방 ’ 에 있지 않습니다 .
낭만의 핵심은 상상 ( 력 ) 입니다 . 현상 넘어 실체를 볼 수 있는 능력 . 주어진 현실에 체념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내일의 개벽을 꿈꿀 수 있는 혁명의 열정은 이러한 상상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
국회 앞에서 광화문광장에서 , 아니 한남동 차가운 길바닥에서 매서운 추위나 눈보라에 굴하지 않고 그 너머 민주주의를 꿈꾸는 상상력에 참 낭만이 깃들어 있습니다 . 변화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를 불온시합니다 .
이들은 이런 능력을 흔히 이성이나 판단력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공상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합니다 . 보편 원리를 강조하고 절제와 순응을 미덕으로 내세우면서 ! 반면 낭만주의자들은 보편의 원리보다 구체적인 삶의 다양한 양태를 중시합니다 .
일상적이고 평범한 구체적 삶의 모습에서 경이로운 의미를 끌어냅니다 . 이들에게 경탄은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창조적 감수성의 증거입니다 . 그들에게 의미는 밖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 주체의 상상력에 의해 창출되는 것입니다 .
김춘수 시인의 말로 ,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 않던 꽃이 “ 내게로 와서 꽃이 ” 된 것은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 ” 는 주체의 적극적 개입이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 전쟁 없는 역사가 어떻게 가능한가 ? 전쟁이 없던 시대가 있기는 했던가 ?
과거의 역사 , 그 증오의 기억에 매몰된 이들은 이렇듯 반박하며 포기해 버립니다 . 포기하면 변화는 없습니다 . 보통 상상력은 기억력과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는 것은 창조적 상상력의 비상을 방해합니다 .
그것이 현재와 미래의 삶을 지속적으로 지배하도록 방치해서는 거듭남을 꿈꿀 수 없습니다 .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질곡의 현 상태를 공고하게 해주는 데 기여할 뿐입니다 . 자본 세상에서 어떻게 소유 없는 삶을 꿈꿀 수 있을까 ?
탐욕과 굶주림으로 뒤엉킨 이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면 꿈꿀 필요가 없겠지요 ? 돈 돈 돈의 논리에 휩싸여 초등학교부터 취업 걱정을 하게 하는 지금이 좋다면 이런 소유 없는 삶 상상할 이유도 없겠지요 .
1971 년에 발표된 존 레논의 이 노래가 오늘도 계속 감동의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못한 꿈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단순한 멜로디에 소박한 노랫말 , 이 노래가 20 세기를 대표하는 팝송으로 칭송되고 많은 가수들에 의해 재해석되며 전 세계인들이 아직도 따라 흥얼거리는 이유를 , 그 까닭을 상상해봅시다 ! 왜 런던올림픽에서 ,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이 노래가 전 세계를 향해 울려 퍼졌는지도 .
갈등과 반목 , 그 질곡의 현실에서도 평화를 향한 거듭남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일 것입니다 . 아니 그 질곡의 도가 더욱 심해지기 때문에 이러한 기원의 노래가 더 절실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 낭만의 상상 , 혼자 하면 망상 혹은 몽상이 되지만 여럿이 함께 하면 현실이 됩니다 .
현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 낭만은 이를 꿈꾸며 꾸준히 노력하는 촛불과 응원봉을 든 젊은이들을 형용하는 말입니다 . 김연아선수의 소치 갈라 공연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라빈의 노래와 영상 함께 감상하며 자꾸 무거워질 수 있는 상상의 날개 휘휘 털어보시기 바랍니다 .
그렇게 낭만을 앞세워 현실의 질곡도 극복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 / 이종민 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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