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내면' 나들목 원산(院山) 오르막길 ( 고개 ) 이지만 자동차로 가면 힘들지 않고 훌쩍 넘는다 . 어우리에서 고산읍내리를 들어서는 경우 그런 곳이 있다 . 바로 율곡리 ‘ 원산마을 ’ 고개이다 . 옛날에 묘한 곳이다 . 한쪽은 산이요 , 한편은 낭떠러지로 그 아래는 깊은 물이다 .
이곳을 지나지 않고는 고산현 ( 縣 ) 에 한 발도 들어놓지 못했던 외길목이다 . 성문이나 다름없는 절묘한 자리이다 . 고산 ‘ 현감 ’ 서울에서 내려왔다 . 명관도 있었지만 아전들과 어울려 백성을 쥐어짜는 탐관오리가 많았다 .
썩어빠진 관리라는 뜻이니 백성들을 못살게 했으므로 요새 자주 쓰는 척결 ( 剔抉 : 살을 긁어냄 . 뼈를 발라냄 ) 대상들이었다 . 이랬으니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라며 일어난 저항운동이 민란이다 . 상소하는 길이야 있지만 이는 선비들이나 할 수 있는 방도다 .
이런 경우 전라감영과 중앙 해당부처를 거쳐야 임금께 상달됐기에 심히 어려운 일로 시정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 잘 못되면 오히려 보복을 당하기 마련이라 화약을 지고 불에 드는 경우와 같았다 . 원님 하나를 갈아치우기가 이처럼 어려웠다 . 그렇다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
여자들이 들고 일어서면 원님 ( 사또 ) 아무리 세어도 꼼짝달싹 못했다 . 여인들이 피 묻은 속옷을 ‘ 동헌 ’ 마당에 깔고 여럿이 들이닥쳐 사또를 삼태기에 태워 ‘ 원산 ’ 밖에 내다 버리면 (?) 다시 못 들어왔다 . 이런 ‘ 룰 ’ 이 있었다 .
그래서 쫓아낸다는 말에 ‘ 삼태기 태운다 .’ ‘ 삼태기 탔다 ’ 는 은어가 있었다 . 이는 ‘ 강제로 끌어내린다 .’ 는 말이다 . 옛날 ‘ 원 ’ 이란 지방 관리로 부사 , 부윤 , 목사 , 군수 , 현령 , 현감들의 총칭 즉 ‘ 수령 ’ 을 말했다 .
공대말로는 ‘ 원님 ’ 이라 했지만 한자로는 ‘ 원 ( 員 )’ 자를 썼다 . ‘ 원산 ’ 마을은 ‘ 원 ’ 을 담아다 내버리는 ‘ 산 ( 고개 )’ 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 또한 조선 시대의 ‘ 역원 ’ 은 출장 중인 관원을 위해 두었던 여관으로 원산이 이런 곳이었다 .
치소 ( 治所 ) 밖 여관에 끌어다 버렸으니 ‘ 역로 ’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 당시 여자들의 힘만으로 해결한 최후 멋진 (?) 수단이었다 . 이래서 고산을 ‘ 억세다 ’ 고 했다 .
원님 ( 탐관오리 ) 은 사내의 체통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얼굴을 싸매고 집에 돌아가 부끄러워 입을 열지 못했다고 한다 . 지금 ‘ 원산마을 ’ 은 여관도 , 산태기 태워 원님 버리는 고개도 아닌 아름다운 이름의 ‘ 탄금바위 . 탄건바위 ’ 로 수문장처럼 서서 자연을 지켜주고 있다 .
중요한 사실을 공개한다 . 윤재봉 전 면장이 둑과 둑을 잇는 새 길을 내며 이 ‘ 바위 ’ 를 떨어 내냐 마냐 고민하다 남겨 놓은 ‘ 탕건바위 ’ 이다 . 당시 윤재봉 면장은 지방 사람이었기에 원로들의 의견을 들어 유지시켰으니 그 지혜를 알아주어야 한다 . 요사이 군민의 사기가 땅바닥에 붙어 있다 .
잘 하면 박수를 보내고 , 못하면 꾸짖는 인물이 없다 . 헛짓을 보고도 입 다물고 있다가 후회하는 군민이 많다 .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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