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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6.04.05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22

마음 흔들리는 운주면 완창리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6.04.05 14:01 조회 5,4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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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변방과 먼데는 잘 모른다. 북한 삼수갑산이나 남쪽 바다 이어도가 그렇듯이 우리 군에서도 운주면 완창리 제대로 알기 어렵다. 오래 전부터 “운주면 전체가 어려우면 ‘완창리’만이라도 논산시에 편입시켜 달라”는 주민들의 바람이 있다.

듣는 사람이야 으례 그러려니 하지만 이들의 맘속엔 얼음장 아래 물 흐르듯 들어나지 않은 잠재 의식이 깔려있다는 걸 알아야한다. 지리적으로 당연한 소망이다. 논산시청이 가깝고 양촌이 이웃이다. 상류는 장선천 바로 그 아래가 논산천이다. 한줄기 내를 두고 이렇게 부른다.

IMG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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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충청도가 틀리고 완주·논산 시군이 달라 그렇단다. 운주 물 99%는 논산을 거쳐 금강에 흘러든다. 그러기에 ‘정반합(正反合)’을 부르짖는다.

생활하기 편리하도록 행정구역을 바꿔 달라는 요청은 자녀 배우자를 두고 헤어지자는 부부관계와 사뭇 다른 현상이라 지탄받을 일이 아니기에 민심을 제대로 알아둬야 뒤통수를 맞지 않는다. 겨울이면 한 골짜기 위아래 마을에서 같은 감을 두고 곶감 축제를 각각 연다.

행정구역이 달라 군수 표, 시장 표가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양편 모두 기이한 현상으로 어수룩한 세상 인심을 고스란히 들어내고 있다. 하나의 길이 금방 운주로(路), 697로로 바뀌며, 김순후 농장 그린시냇가 횟집 푸른산 유원지가 운주냐 양촌이냐 한 참 물어야 감이 온다.

안심(安心), 원완창(元完昌), 엄목(嚴木)마을 주민들 마음잡아 번창하기를 바란다. 안심사는 고산현 3대 사찰(화암사, 운문사, 안심사)의 하나로 교통이 편리한 요지에 있어 신도가 많았고 재력이 넉넉해 서책 인쇄를 하던 가람이었다.

김종직, 구영, 구치용 등 조선 유생들이 드나들었으며 부도와 비석이 역사를 대변한다. 다만 6·25 전쟁이 원수이다. 절에 불을 질렸다. 부끄러운 일이다. 대웅전이 웅장했고 추녀와 천장 및 문짝이 유별나 국보급(?) 건물이었다. 전쟁은 좋은 것과 똑똑한 사람을 먼저 쓸어간다. 싸움은 비열한 죄악이다.

지금 건물들은 불탄 자리에 복원한 것들이나 당시에 비하면 시늉만 냈다고 봐야한다. 옛 암자 ‘도솔산숙정암(兜率山淑貞庵)’ 석각(石刻)이 있다는데 동행자를 구한다. 완창리 정보마을 전시장 앞에는 첨성대 조형물이 있다.

이 마을 269번지 일암(一菴) 강희목(姜熙牧) 선생을 기억해야 한다.『황태원자(皇胎元子)』,『태교지도(胎敎之道)』,『명륜(明倫)의 빛』등 책 여러 권을 냈으며 ‘새 마음 도덕 노래’가 있어 보기 드문 도학자이다.

선생 부인께 ‘사람 많이 찾아드니 귀찮지 않으시냐?’ 물으면 ‘하나도 괴롭지 않다’ 하신다. 부창부수(夫唱婦隨) 내외가 똑같다. 호기심이 발동해 양촌휴양림에서 을미년 과세를 했다. 뒷산에도 올랐다. ‘황산벌로(路)’ 계백 장군 생각이 난다. 숯고개를 넘은 5만 신라군이 밟기 운주나 논산 같은 땅이었다.

1350여년 전의 동질성은 오래도 이어진다. 만일 운주가 논산에 넘어가면 이치전적지의 역사가 ‘충남’ 것이 된다. 내 역사 네 역사야 없지만 완주군은 지킬 것 워낙 많다. 멀수록 가깝게 해야 한다. ‘壬亂殉國無名四百義兵碑’를 새로 인식하자.

/이승철 국사편찬위 史料조사위원( esc2691@naver.com ) 칼럼니스트

현장 사진

마음 흔들리는 운주면 완창리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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