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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4.02.20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26

명절 차례주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4.02.20 09:15 조회 4,1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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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차례주 ‘ 술로 예를 이룬다 ( 酒以成禮 )’ 라는 말에서 보듯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에서 각종 제례 , 명절 세시풍속 , 손님맞이에 술은 가장 중요한 음식이었다 . 집집마다 필요할 때 술을 빚어 마시는 가양주 문화가 발달하였고 , 집안만의 특색있는 술이 다양하게 존재했다 .

마을 단위의 소규모 양조업이 성행했으나 술에 세금을 무는 정책은 시행되지 않았었다 . 일제가 대한제국의 제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은 주세법이었다 .

1930년대 정종 신문광고(네이버 출처)
1930년대 정종 신문광고(네이버 출처)

주세와 기본 제조량을 일반 가정이나 소규모 주 조업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여놓아 자가양조와 소규모 주류업체가 도태되도록 통제해갔다 .

1916 년에 더욱 강화된 주세령이 발포되면서 집에서 빚은 술을 친척이나 이웃에게 나눠줄 수 없었고 , 자가면허 제조자가 사망했을 경우 상속인이 대를 이어 주류제조를 할 수 없게 금지조항을 만들어 이를 위반할 경우 이천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였는데 , 당시 공무원 월급이 40 원이었으니 술을 빚는 행위가 얼마나 엄격히 통제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

이러는 사이 일본자본으로 설립된 대규모 양조업체가 생겨나면서 일본식 주조법으로 빚어지는 청주와 희석식 소주가 대량생산되었다 .

30 만 호에 달하던 소규모 자가면허제조업자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 1934 년에 일본식 청주 제조공장이 우리나라에 121 개나 되었다니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다는 말은 이를 둔 말이었다 .

부의주 , 석탄주 , 법주 , 과하주 등 별도의 이름을 지니고 있던 우리술은 탁주 , 약주 , 소주로 획일화되어 오늘날까지도 누룩으로 빚는 우리술은 탁주와 약주로 분류되고 , 일본식 입국 ( 찐 쌀에 순수 배양한 누룩곰팡이 ) 과 우리술의 고유한 발효제인 누룩을 전체 쌀양의 1% 미만으로 첨가물처럼 겨우 가미하여 빚는 일본 방식의 술은 청주로 분류되었다 .

종래 탁하게 거른 술을 탁주라 하고 , 맑은 술을 떠 청주라 부르던 우리술의 호칭을 약재를 넣어 빚은 술이 아님에도 약주로 부르게 된 것이다 . 아름답고 향기롭던 우리술이 몰래 불법적으로 빚는 밀주 신세로 전락해버린 100 여년 동안 우리의 명절 차례상을 차지한 술은 바로 일본식 청주였다 .

정종 , 경주법주 , 백화수복과 같은 술이다 . 명절날 아침 차례상 앞에 놓여있곤 했던 갈색 됫병들이 (1.8 리터 ) 정종 ( 正宗 ) 은 원래 1840 년 일본 효고현의 한 양조장에서 만든 술의 상표다 .

1883 년에 부산에 세워진 이마니시 양조장에서 최초로 정종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 서울의 미모토정종 , 부산의 히시정종 , 마산의 대전정종 등 지역마다 정종이라는 명칭을 붙이게 되면서 일본식 청주 ( 사케 ) 를 부르는 이름으로 보통명사화된 것이다 .

한때 ‘ 퐁퐁 ’ 이라는 브랜드명이 주방세제 전체를 지칭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

위생적이고 과학적이며 맑고 투명한 색과 저온 살균기술을 통한 깔끔한 맛을 내세워 일본식 청주는 고급스럽고 귀한 술로 인식되었고 , 반복된 풍속은 문화로 고착되어 우리 스스로 설날 차례상에 일본식 청주를 조상님께 바치는 서글픈 풍경을 직시하게 된 것은 불과 1990 년대 후반 우리술에 대한 역사인식이 시작되던 시기부터였다 .

전통주라고 부르는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 주세법 이전의 누룩으로 빚는 가양주 방식의 술인가 . 주세법 이후 100 여 년간 일본식 양조법을 도입해 개량된 술이나 일본식 입국을 사용해 빚어 지난 세월 우리의 희노애락을 달래주었던 값싼 막걸리는 전통이 아닌가 물으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

일본식 청주를 마시지 말자거나 차례주로 쓰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 우리술의 역사를 길게 돌아본 이유는 차례주를 고르는 기준을 알고서 기호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장 사진

명절 차례주 사진 1

첨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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