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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2.10.24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0

벼가 익는 들녘의 색, 청주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2.10.24 13:18 조회 4,38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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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익는 들녘의 색, 청주 한 잔의 술을 받아들면 먼저 색을 감상하고 , 향을 음미하고 , 그리고 입안에 머금어 맛을 느낀다 . 술이 어떤 빛깔을 띠고 얼마나 맑고 투명한가는 술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 먼저 눈으로 술을 맛보는 것이다 .

우리술 청주는 벼가 익을 무렵 초록과 황금빛이 뒤섞인 가을 들녘의 색이다 . 대중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

2018 대한민국명주대상 김유녀씨의 청주
2018 대한민국명주대상 김유녀씨의 청주

와인 , 맥주 , 사케 등 나라마다 자랑거리인 술들은 독특한 색으로도 정체성을 가지듯이 담황색 청주 역시 세계 어느 술과 견주어도 지지 않는 아름다운 색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 막 짜낸 백색의 탁주를 병에 담아 놓으면 2~3 일 안에 맑은 술과 바닥에 가라앉은 하얀 침전물이 층을 이루게 된다 .

맑은 술만 조심스럽게 따라 다른 병에 옮겨 담아 2~3 주 더 숙성시키면 잔여 침전물이 마저 가라앉는다 . 뜨거운 물로 소독해 햇볕에 말려둔 유리병에 맑은 술만 다시 부어 마개를 닫으면 청주를 얻으려는 술 빚는 사람의 일이 일단락된다 . 비로소 완성된 청주의 색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

전통방식으로 청주를 얻으려면 용수를 사용한다 . 술독 내부는 가벼워진 밥알과 밀 껍질이 표면에 떠 있고 , 가운데 부분은 액화된 술이 차 있고 , 바닥엔 무거운 밥알 , 누룩 지게미 , 발효되지 못한 전분 등이 가라앉아 있다 . 이때 대나무 살을 엮어 만든 용수를 술덧 속에 박는다 .

액화된 술이 용수의 대나무 살 틈새로 쪼르르 모이게 되는데 처음엔 탁한 술이 고였다가 며칠 지나 침전물이 완전히 가라앉으면 조심스럽게 청주를 뜬다 . 인위적인 압력을 가해 술을 짜서 침전시키는 방법보다 자연스럽게 가라앉혀 떠내는 것이 가장 맑은 청주를 얻는 방법이다 .

다만 대나무로 만들어진 용수는 삶아 햇볕에 잘 말려두어 용수에 있는 잡균이나 잡내가 술에 배지 않도록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 청주 ( 淸酒 ), 맑은 술이다 . 대개 밀 누룩으로 빚는 우리술은 누룩 속에 든 한 줌의 밀과 양조용 쌀이 발효되어 조화된 옅은 노랑색을 띤다 .

양조에 사용된 누룩의 양이 많을수록 노랑 빛깔이 진해지고 , 알콜 도수가 낮거나 잔당이 많아 단맛이 강할수록 술은 맑지 않다 . 그러니 누룩을 적게 쓰고 알콜 발효를 잘 시켜낸 술일수록 연노랑 빛깔을 띠며 맑고 투명하다 .

술을 잘 빚는 고수들이 빚은 청주를 보고 있노라면 숲의 요정들만 드나드는 깊은 황금 연못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 햇빛을 온전히 투과시켜내는 맑고 투명한 담황색은 보는 것만으로 술이 지닌 향과 깔끔한 맛 , 높은 알콜 도수를 가늠하게 되는데 , 예상은 거의 빗나가지 않는다 .

일제강점기 이후 백 년에 걸친 우리 술의 암흑기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술의 가치를 와인이나 위스키 , 사케와 비교해 평가하는 기이한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 오히려 요즘 젊은 세대에게서 편견을 떠나 우리 술을 느끼는 대로 평가하고 표현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

‘ 쌀로 빚은 와인 (rice wine)’ 이라는 영역에서 한국 술의 진수라 할 청주가 그 아름다운 색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킬 때도 머지않았음을 예감하는 변화이기도 하다 . 벼가 익는 가을 들녘의 색을 담은 청주를 만나거든 투명한 유리잔이나 백자 잔에 따라 조금은 길게 눈으로 먼저 맛보시길 바란다 .

술잔에 담긴 맑고 투명한 색을 발현시키기 위해 곡식을 키워낸 대지와 햇살 , 비와 바람 , 농부의 일 , 술을 빚어낸 이의 노고 , 미생물들이 만들어낸 시간의 변화를 눈으로 , 그다음은 코로 , 입으로 천천히 느껴보시길 바란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장 사진

벼가 익는 들녘의 색, 청주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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