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에 누룩 법제하기 우리 술의 세 가지 재료는 쌀 , 보리 , 옥수수 , 조 등과 같은 곡물 , 물 , 그리고 누룩이다 . 그중 누룩은 우리 술의 처음이자 끝이라 할 만큼 중요한 발효제이며 , ‘ 국 ( 麴 )’ 또는 곡자 ( 麯子 ) 라고도 부른다 .
쌀이야 언제든 슈퍼에만 가도 살 수 있고 , 물은 끓여서 차게 식혀 사용하면 되는데 누룩은 도대체 어디서 구해야 하나 . 스마트폰 안에 모든 답이 있다 . 누룩을 검색해 국내 유명한 누룩회사의 누룩을 선택해 주문하면 이삼일 내로 집 앞에 도착한다 . 참 좋은 세상이다 .
견물생심이라 일단 누룩을 가지고만 있어도 언제든 술 빚기를 도전해 볼 수 있으니 혹시 술을 빚어볼까 망설이시는 분께 누룩부터 갖춰놓자고 말씀드리곤 한다 .
‘ 무릇 술맛의 좋고 나쁨은 누룩을 잘 만드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 『 증보산림경제 』 (1766, 영조 42) 의 기록을 보면 좋은 술을 만드는데 누룩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
누룩 속에는 곡물의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는 누룩곰팡이 , 당을 먹고 알코올을 생성시키는 효모 , 잡균의 침입을 막아주는 젖산균과 같은 발효 미생물이 증식되어 있다 . 누룩은 술을 만드는 힘 좋은 일꾼들을 잘 키워 즉시 투입될 수 있도록 대기시키는 전진기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기후에서는 주로 밀을 거칠게 빻아 수분을 약간 주고 반죽해 틀에 넣고 단단히 디딘 후 발효시키는 떡 형태의 누룩으로 발전해 왔다 .
알갱이가 큰 밀은 다른 곡물에 비해 전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 글루텐 성분이 많아 반죽이 단단히 뭉쳐져 누룩곰팡이와 효모에게 풍부한 먹이와 안전한 집을 동시에 제공하는 매우 적합한 재료였기 때문이다 .
누룩을 ‘ 띄운다 ’, ‘ 발효시킨다 ’ 는 것은 효모와 누룩곰팡이가 살기 좋아하는 따뜻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를 제공해 밀반죽에 안착시켜 다량으로 증식시켜 놓음을 말하는 것이다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자회사는 광주 송학곡자 , 부산 산성누룩 , 진주곡자 , 상주곡자가 있는데 , 밤이나 도토리 크기로 빻아 소포장 되어 있어 술 빚기에 아주 편리하다 . 누룩을 주문해 바로 술을 빚는 것은 아니다 . 누룩의 효능을 더 높이기 위해 법제를 해야 한다 . 햇볕에 널어두는 일이다 .
일교차가 크고 건조한 봄과 가을은 누룩을 법제하기 좋은 철이다 . 채반에 종이를 깔고 누룩을 펼쳐 낮 동안에 햇볕을 쏘이고 , 밤 동안에 찬 이슬을 맞게 해 험난한 생육 조건에서 적응력이 강한 미생물을 키워 안전한 알코올 발효를 이끄는 원리이다 .
특히 쨍한 햇볕과 건조한 바람은 탈취와 표백작용을 일으켜 술에서 누룩곰팡이 냄새를 줄이고 술색이 밝아지게 한다 . 동상면 단지마을에 사는 술 빚는 고수인 김유녀 씨의 하루는 누룩을 너는 일로 시작해 걷는 일로 끝난다 .
깊은 산골짜기에 잠깐 드는 맑은 햇볕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바람이야말로 김유녀 씨의 술을 빚어내는 일등공신이다 . 쏟아지는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는 누룩에 코를 대면 구수한 누룩 냄새에 바짝 마른 햇볕의 냄새 , 방금 스쳐 간 봄바람 냄새도 묻어난다 .
비 맞은 누룩은 버려야 하니 날이 흐려지면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도 그녀의 오래된 일과이다 . 누룩 법제에 들이는 공력만큼이나 김유녀 씨의 술맛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 한 줌의 깨가 무성한 깨밭을 이루듯 한 되의 누룩은 항아리에 가득한 쌀밥을 술로 만드는 묘약이다 .
춘분을 지나는 봄볕과 바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쏟아지니 누룩을 채반에 펼쳐 널어보면 성급한 사람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듯 벌써 술향기에 취할지도 모르겠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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