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후배에게 무척 서운해 삐쳐있었다. 얼굴도 보기 싫고 말도 하기 싫었다. ‘어른스럽게 행동하자’고 몇 번씩 되뇌어도 잘 안됐다.
여러 사정을 모두 헤아려 담담하게 판단해보면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싶다가도 “내 입장을 조금만 더 헤아려 줬다면” 이라는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도대체 담담해 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침묵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방식은 내 성미에도 안 맞고 상대에게 너무 가혹한 짓이라 그래도 웃으며 안 그런 척 행동했다. 내 몸에서 독이 나오는 것 같았다. 머리도 아프고 몸도 쑤시고 결국 체한 것처럼 몸이 으실으실 하더니 한 이틀 고생했다. 마음이 몸을 괴롭히는 것이 맞다.
어른스럽게 행동하자.’ 내가 계속 되뇌인 말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어른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국어사전에 “어른스럽다”는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 같은 데가 있다’는 뜻이다. 이미 나이든 어른에게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절치 않은 것이다.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이란 모순된 말을 하게 되는 거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난 어떤 부모가 될까?’ 고민해 봤다.
후배를 아이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서운해 하기보다 담담하게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그런 부모가 돼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아이가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없고 신체적으로도 부자유스러우니 ‘내가 다 받아주고 돌봐줘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아기에게는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 내 몸이 힘들고 지쳐도 너른 마음으로 받아주게 된다. 그리고 늘 이쁘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늘 지속될 수 있을까?
점점 말을 알아듣게 되고 뭔가 사리분별을 하게 되면 아이의 뜻과 내 뜻이 다르고, 아이의 입장과 내 입장이 달라지게 될 텐데. 그때도 서운하지 않고 내 뜻만 세우지 않고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을까? ‘인자한, 너그러운, 자애로운 부모’. 부모의 성품으로 제일 먼저 떠오른 것들이다. 어렵고 힘들겠지.
가까이 있는 후배에게 느꼈던 서운함보다 우리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더 큰 애증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너그러운 선배가 되지 못하면 너그러운 부모는 더 어려울 거다. 그러고 보면 일상이 부모되기 연습인 것 같다.
“경험은 우리에게 발생한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처하는 우리의 행동을 의미한다”(올더스 헉슬리)는 격언을 봤다. 순간의 다양한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처럼 앞으로의 나도 만들어 갈 것이니 많이 겪어볼 일이다.
이번에 느낀 것 중 하나는 ‘내 마음이 평화롭고 여유롭지 않으면 상대에게 너그러울 수 없다’는 점이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다 포용하고 받아들여 준다는 것은 나를 속여 위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형태로라도 금방 터지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우선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나에게 솔직해져야겠다.
그리고 얼른 나를 달래줘야겠다. 삐딱하고 비뚤어지지 않도록. /고산 제하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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