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에 대하여 3 월이 시작되기 전 창고방 대청소를 했다 . 1 년 이내에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은 지역에서 나눔하고 꼭 필요한 물건만 추려놓았다 .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씨앗도 한곳에 모아 정리하는데만 꼬박 반나절 이상이 걸렸다 .
그러고는 파종하기 위해 월별로 차곡차곡 모아 봉투에 넣어놓고 씨앗 심는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 드디어 경칩이 되자 개구리가 벌떡 일어나듯이 내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 ‘ 아하 ~ 이제 알겠다 !
내 몸은 내가 일부러 움직이지 않아도 저절로 움직이는구나 !’ 텃밭농 5 년차가 되니 자연의 흐름뿐만 아니라 나의 몸과 마음의 패턴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도시에 있을 땐 몰랐다 .
밝고 활발한 봄의 기운을 타고났어도 빌딩숲에 가로막혀 자연의 파장을 느끼지 못하고 회색빛으로 가득한 도시처럼 무감각하게 살던 날들이 더 많았으니까 .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환경이 내 삶을 좌우할 정도로 자유 의지보다는 자연의 의지로 살아가고 있다 .
어느덧 경천에는 여기저기 복수초가 만개해 반려견 둥글이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면 매화 꽃봉오리가 터질 듯이 팽창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어디 매화뿐이랴 . 만물이 겨울잠을 깨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며 세상에 고개를 내밀 적절한 타이밍을 보고 있다 .
그러고보면 우리는 ‘ 자연스러움 ’ 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 심지어 광고나 마케팅에도 너무 많이 사용되어서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연스러움이 어떤 것인지 알고싶고 또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 종종 되돌아보기도 한다 .
올 초에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명상을 시간과 마음을 내어 시작했다 . 명상을 쉽게 말하면 집중과 몰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 , 언제나 할 수 있었지만 생각의 산란함에 가로막혀 마음의 힘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낸 것이다 .
명상을 하다보니 자연스러움에 대해 저절로 알게되는 면이 있다 .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지금의 때를 아는 것 , 아니 그보다는 지금을 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
그런데 왜 우리는 언제나 1 시간전 , 1 달전 , 1 년전 , 심지어 10 년전 기억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 전에 비봉에 사는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
우리는 집앞에 있는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수확한 농산물로 요리를 하며 , 농사를 생활이자 놀이로 여기곤 했는데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 어느 날 그분께서는 텃밭에 나가면 생각이 줄어들고 머리가 맑아진다고 하였다 .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오히려 그 반대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물론 농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근육을 움직이니 몸이 시원하고 머리와 정신이 맑아지는 면이 있었다 . 어린 아이처럼 말이다 .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고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몸은 텃밭에 있지만 생각은 여기저기를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 초월주의 철학자인 소로우는 심플하게 살기위해서 하는 일을 한두가지에서 서너가지로 늘리지 말라고 했던가 . 몸과 마음과 행동이 한곳으로 모일 수 있다면 호미질 한번 , 씨앗 하나에 온 우주가 고스란히 담길 것 같다 .
그리고 그 씨앗은 풍성한 열매를 갖아다 주겠지 . 자연스러움은 시간을 초월한 세계 , 과거도 미래도 없는 정말이지 지금 , 지금만이 존재하는 삶이 아닐까 . /2018년 완주로 귀촌한 신미연 은 작은 텃밭을 일구며 제로웨이스트, 자급자족의 삶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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