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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5.01.11

더불어숲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직업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5.01.11 21:47 조회 5,5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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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일 년간 대학교수한 적이 있다. 그 대학에 임용 서류를 냈을 때 일이다. 임용 심사위원 한 분이 내 서류를 보다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12년 동안 개근했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입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 하지만 나는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실제로 조퇴는 한두 번 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생활기록부에 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12년 개근이 잘 못된 기록이어서 창피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조퇴는 몇 번 있을지언정 12년간의 그 기록에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생각이 깨어진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교양 국어시간에 강사가 추천한 인물평전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는 숙제가 있었고 나는 김구선생의 평전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 책 속의 김구선생은 내가 아는 김구가 아니었다. 더욱 놀란 것은 김구선생의 주변 인물들이었다.

김구선생은 내가 아는 김구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훌륭하다고 배운 동시대의 주변 인물 몇몇은 시장 잡배나 다름없었다. 그 때 이런 왜곡된 지식을 배우기 위해 12년간 꼬박꼬박 학교에 간 것을 후회했고 그 후회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책들을 대학 동아리 방에서 읽으며 지속되었다.

이제는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지만 농촌지역 아이들의 진로문제에 관심이 생겨 학부모들을 자주 만난다. 지금 세상이 우리가 살던 세상과 달라 학부모들과 몇 가지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서로 말문이 막히고 먹먹해질 때가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을까’, ‘그 좋은 직장에서 평생 일할 수 있을까’, ‘좋은 직장에서 평생 일하며 살면 행복하게 사는 걸까’ 물론 예전에는 어떻든 학교를 졸업하면 수준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직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구성하고 또 자아를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학교를 잘 다니는 것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고등학교의 좋은 성적, 상위권 대학의 진학, 안정된 일자리는 관계가 있기는 해도 아주 밀접한 상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것과 개인의 행복과의 관계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무슨 공부가 필요한 것일까.

영어단어의 Job과 Vocation을 모두 직업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Job은 ‘돈을 벌기 위한 일자리’이고 Vocation은 ‘소명을 가진 직업’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은 적어도 세, 네 종류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직업을 가지면서 살 것이다.

젊은 시절의 직업은 생계유지와 가족부양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한 Job이라면 인생의 마지막 직업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로 자아를 실현하고 혹은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한 Vocation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 이전의 Job은 마지막 Vocation을 찾기 위한 중요한 경험을 쌓는 과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모세대인 우리가 그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알려주어야 하는지, 무슨 공부를 하도록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좋은 학교 성적으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 안정된 첫 번째 직장에 들어갔다고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둘째가 학교를 다니기 싫다하기에 방학동안 검정고시 학원에 다녀보라 했다. 힘들어할까 싶었지만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혼자 굿굿하게 다니고 있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학교를 다니는 방법이외에도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 둘째에게 이번 겨울방학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방학이 될 것이다. /귀촌인·한겨레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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