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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6.02.11

더불어숲

열정페이와 열정노동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6.02.11 15:25 조회 5,36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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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대학 입학시험을 보고 시간적 여유가 많을 때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대학원에 다니던 사촌형이 조사한 설문조사결과를 컴퓨터 코딩지에 입력하는 일이었다. 한 이십 여일, 하루 4~5시간 일하고 그 당시 적지 않는 금액의 보수를 받았다. 그런데 그 돈에 기쁘기보다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그 전까지 나는 내가 한 일의 대가를 돈으로 환산한 적이 없었다. 교실의 환경미화를 위해 일요일에 학교에 나가 청소를 할 때도, 집으로 놀러온 친구들을 위해 라면을 끊여줄 때도, 매년 연말 손으로 그린 작은 달력을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때도 그 일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았다.

아니 돈을 염두하고 일을 하지 않았다. 난생 처음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은 순간, 앞으로 내 노동은 돈으로 환산될 것이라는 사실에 서글펐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지난 2월초 우리 지역 청년들이 운영하는 씨앗문화예슬협동조합이 주최한 ‘한겨레 청춘스테이션’ 완주 행사가 삼례예술촌에서 열렸다.

‘한겨레 청춘스테이션’은 마을의 버려지거나 소외된 공간에 모여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면서도 지역을 위해 일하고 있는 청년들을 응원하기 위해 지역을 순회하면서 작은 토론회를 개최하고 그 활동공간을 청년들이 들르고 머무르는 정거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청춘스테이션으로 지정하는 행사이다.

이 행사는 한겨레신문이 후원하고 지원하는데 한겨레신문은 앞으로 이러한 청년들을 전국에서 발굴할 계획인데 이 날 완주의 삼삼오오 게스트하우스가 청춘스테이션 1호역으로 지정되었다.

청춘스테이션 현판식 사전에 열린 ‘청년 귀농귀촌, 지역에서 길을 찾는 청년들’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는 우리 지역을 찾아오는 청년들의 비빌언덕이 되고 있는 삼삼오오 게스트하우스의 이야기, 완주청년들의 하루 일과와 한 달 생활비 조사 결과, 고산미소시장에서 다섯 가지 일을 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가는 청년의 좌충우돌 생존기 등이 소개되었다.

청년들의 이야기 중, 흥미로운 부분은 청년들의 수입과 지출에 관한 것이었다. 도저히 지탱 불가능할 것 같은 적은 보수에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지출로 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에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럽기만 했다.

몇 달 전 청년들이 모여 농사를 짓고 있는 충남 홍성의 ‘젊은협업농장’을 방문하여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선생남과 술자리에서 ‘열정페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일부 업종에서 청년들에게 인턴, 학습 등의 이유로 비인간적인 노동을 강요하면서 보수는 거의 주지 않는 열정페이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충분한 보상을 한다면 어떠한 요구도 용인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한편으로는 청년시절에는 돈으로 계량되지 않는 노동과 시간이 필요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즉, 열정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완주 청년들이 적은 수입과 궁핍한 생활에도 불안하지만 밝고 발랄하게 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은 거의 하지 않는 아니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정해진 휴일과 시간이외에는 돈을 벌기 위해 특정한 공간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나이의 이런 사람이 되고 보니 나의 노동과 나의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던 내 청춘시절이 아깝기만 하다. 우리 청년들에게 열정페이가 강요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더불어 청년들의 열정노동을 응원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청년들을 도울 수 있는 어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 임경수 논산시 희망마을지원센터 센터장/귀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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