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풍산개 암수 두 마리가 있다. 그 중에 암놈은 어려서부터 울타리를 넘거나 목줄을 끊고 탈출을 감행하곤 해서 풍순이라는 이름이외에 ‘빠삐용’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 별명에 걸맞게 완주에 온 첫날, 이사짐 정리를 하는 사이 느슨하게 나무에 묶어놓은 목줄을 매단 채 풍순이는 탈출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멀리가지 않은 채 옆집 마당에서 발견해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달 뒤부터 풍순이의 식성이 바뀌고 몸매가 바뀌더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나가자 임신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같이 키우고 있는 풍산개 수놈이 아빠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삿날 탈출한 풍순이를 데려온 이웃집 마당에 있던 누런 진돗개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하얀 강아지를 낳지 않고 다른 색깔의 강아지를 낳는다면 분명 옆집 진돗개가 그 아빠일 것이었다.
드디어 풍순이의 출산일이 되었고 태어난 두 마리의 강아지는 내 우려대로 하얀색이 아닌 갈색과 흑갈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다. 완주에 내 생활을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페이스북에 통해 이 이야기를 알렸다. 많은 친구들의 댓글을 썼다.
‘외도를 한 풍순이가 잘 못했다’, ‘제 아내도 지키지 못한 풍돌이가 잘못했다’, ‘풍돌이가 불쌍하다’ 등등. 그런데 댓글의 맨 아래 이런 글이 하나 있었다.
‘우리 중에 순종은 없습니다’ 최근 식용으로 들여와 사육했던 뉴트리아가 자연에 방사되어 생태계를 교란하고 농산물의 피해를 준다며 비인도적인 퇴치방법을 제안한 대학교수 언급이 SNS상에서 논란을 일으킨 기사를 보면서 ‘순종’이나 ‘토종’이라는 말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말이고 그 기준도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우리 지역에서도 다문화 여성, 이주 노동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웬만큼 규모가 있는 농장에는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고 이주 결혼 여성들도 늘어나 우리 센터에서 이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가끔 작은 가게에서, 식당에서 다 같은 손님인 다문화 여성과 이주노동자가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얼마 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한국 농촌지역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보고서를 토대로 한 이 보도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대한 착취가 만연하며 폭력, 불결한 숙소, 과다한 노동시간, 정기휴일 무시, 무급 잔업의 강요 등이 난무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고용허가제는 “착취와 강제노역을 위한 인신매매가 성행하도록허용하는 수치스러운 제도”라고 비판하였다.
우리 집 풍순이의 페이스북 이야기에 달렸던 댓글처럼 우리 또한 순종이 아니다. 오래 전 우리 할아버지 중에 누군가가 이주노동자였을 수도 있고 할머니 중에 한 사람이 다문화 여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과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그들은 뉴트리아처럼 우리 삶을 위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으며 농촌사회에 적정한 인구를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양의 한 미래학자가 우리나라가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만 두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첫 번째는 북한과 빠른 시간 안에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아시아의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공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 오전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마더쿠키 빵을 팔고 있던 다문화여성의 하얀 미소를 보면서 다른 날보다 더 많은 빵을 샀다. /임경수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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