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기쁨과 더 큰 고통의 업 누구에겐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 . 지리산 뱀사골을 찾아 더위를 식히고 오는 길이다 . 이 찜통더위가 누군들 힘겹지 않겠냐마는 오래전에 마련된 일이었다 . 붓다의 가르침을 헤아리려 모인 도반들과 더불어 나선 길 . ‘ 책거리 ’ 가 핑계가 되었다 .
이른 아침 길을 떠났는데도 도착하는 순간 그곳은 벌써 이글거리고 있었다 . 탐방로를 얼마 걷지도 못했는데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 가던 길을 멈추고 계곡물에 한참 동안이나 발을 담그고 머물렀다 . 역시 계곡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 발을 담그고 머잖아 땀이 식었다 .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붙박이고 싶은 심정이라니 . 에어컨이라는 파괴적 이기가 아니라도 이 무더위를 다스릴 수 있는 실낱같은 길이 있다는 것 . 그것이 다름 아닌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에 일순 가슴이 먹먹하다 . 하지만 그 자연은 멀기만 하다 .
거기에 다가서려면 너무 많은 배기가스 ( 온실가스 ) 를 내뿜게 된다 . 찰나의 괴로움을 덜기 위해 더 큰 고통의 업을 쌓는 셈이니 결국은 어리석은 짓이다 . 그러니 안타깝고도 미안해지는 것이다 . 계곡을 뒤로 하고 근처에 자리 잡은 실상사를 찾았다 .
그곳 전각에 가부좌를 튼 불상은 아무 말이 없다 . 보광전 앞뜰에 서 있는 석등만이 자등명법등명 ( 自燈明法燈明 ,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 ) 의 가르침을 넌지시 일깨우는 듯하다 . 그렇다 . 자업자득이거늘 누굴 탓하고 , 누구에게 길을 구하겠는가 .
결국은 저 빛나는 물질문명을 자랑해 마지않는 인류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 하지만 아직 해답은 없고 , 갈수록 상황은 나빠지고 있다 . 아직 7 월초인데 더워도 너무 덮다 . 지난해는 7 월 중하순이 되어서야 섭씨 30 도를 넘어섰던 최고기온이 올해는 아예 6 월말부터 이어지고 있다 .
기상뉴스는 이런 현상을 두고 북태평양 고기압이니 , 유라시아 폭염열차 따위의 용어를 빌어 설명하고 있다 . 이상고온이 휩쓸고 있는 유럽이나 남미에 견주어 약과라고 하지만 아직일 뿐이라고 한다 . 이미 그 예고편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역대 최악의 폭염을 피할 수 없을 모양이다 .
그것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기후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 그 사실을 나는 절감한다 . 지난해 이맘때 저수지 둑이 무너져 논배미에 물을 대지 못하는 바람에 수북이 올라온 김을 매느라 열흘 가까이 애를 먹어야 했다 .
물론 무척 힘에 겨웠지만 무더워서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 그런데 올해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면 그런 끔찍한 상황도 없었을 것이다 . 김매기는 엄두도 못내고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 이 찜통더위에 김매기란 도무지 될 법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하여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은 정말 천만다행이라 감지덕지하고 있는 중이다 . 그렇지만 나로서는 이 기후위기를 놓고 이래저래 걱정을 쏟아내는 일 말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 밀려드는 해일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극심한 무력감에 시달릴 뿐이다 .
해마다 여름이 되면 뻔한 얘기를 되풀이 들먹이는 자신이 딱해지기도 한다 . 그래도 어쩌겠는가 . 더위를 식히는 오늘 소풍은 시원한 팥빙수와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마무리되었다 . 다시 고산으로 돌아온 오후 6 시 . 차문을 열고 나오니 한증막 같은 열기가 후끈 다가온다 . /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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