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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5.06.18

농촌별곡

못자리에서 논배미로!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5.06.18 17:05 조회 2,14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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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에서 논배미로! 어둠이 깃든 초여름 밤 , 시골 마을은 꽤 시끄러운 편이다 . 울음인지 , 노래인지 개구리 떼창으로 요동친다 .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그 입체음향은 그저 소란스럽지만은 않은 울림이 있다 . 그 사이를 뚫고 컹컹 울리는 동네 개 짖는 소리 .

그것만으로도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 굴뚝에 밥 짓는 연기 피어오르는 풍경 , 노는 데 넋이 나간 아이들 부르는 엄마 목소리는 이제 사라졌지만 . 그리고 끊일 듯 이어지는 애절한 소쩍새 울음 . 여름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

저 멀리 그리고 가까이 산허리는 콩고물을 뿌려놓은 듯 부연 밤꽃으로 뭉개졌다 . 그러고 보니 유월로 접어들었다 . 상추는 꽃대를 올리고 , 보리가 익어가는 무렵 . 이제 이 고장은 이모작 양파와 마늘 캘 때로 이 시절을 떠올린다 . 하지만 유월은 뭐니 뭐니 해도 모내기다 .

안 그래도 지난 주말 여럿이 함께 동네 모를 심었다 . 고산향교육공동체가 마련한 < 풍년기원 단오한마당 > 의 ‘ 꽃 ’ 이라 할 손모내기 . 고산의 두 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 1 백 여명이 참여했고 , 이번에도 고산권벼농사두레가 행사를 이끌었다 .

못줄 뒤로 늘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처음엔 꼼지락꼼지락 굼뜨던 아이들도 열 줄 남짓 심다 보면 이력이 붙게 돼 있다 . 맨발바닥에 닿는 진창의 미끈한 느낌이 낯설기도 하고 , 더러 다리가 꼬여 발라당 넘어지기도 하지만 한 시간 남짓 모내기를 마치고 나면 모두가 뿌듯한 표정이다 .

이건 그 옛날 , 동네마다 모내기 두레를 짜서 이른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보름 남짓 바쁘게 돌아가던 시절의 손모내기가 아니다 . 어디까지나 ‘ 체험 ’ 일 뿐 현실이 아닌 게다 . 이 시대의 실화는 이앙기 한 대가 그 숱한 일손을 대신하는 기계 모내기다 . 그 모내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

십 년 넘게 벼농사 이력이 쌓였거늘 막상 모내기를 앞두고도 심신이 천근만근 무겁다 . 어차피 해야 할 일 미룰 대로 미루다가 코앞에 닥치고야 몸을 움직이니 참으로 병통이 아닐 수 없다 . 논둑에 우거진 풀 애진작에 쳐주었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뤄오다가 어제서야 예초기를 점검하고 시운전을 했다 .

이력이 문제가 아니라 심성의 문제일까 . 어쩐 일인지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다 . 이래저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올해는 특히 어렵겠거니 해두자 . 어쨌거나 지금은 모내기를 위해 논배미를 삶아야 하는 시간 . 한가득 물을 가둬 흙을 바수고 써레질을 하는 일이다 . 물론 트랙터라는 기계로 하는 작업이다 .

그런데 비가 내린 지 오랜 터라 물 구하기가 쉽지 않는 논배미가 더러 있는 모양이다 . 하지만 어찌어찌해서라도 물을 가둬 모낼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 지난해는 저수지 둑이 터져 물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결국 모내기를 하지 않았던가 .

사실 소규모 벼농사라는 게 농가경제 측면에서 그 가치를 찾기가 힘든 실정이다 . 그렇다면 무엇하러 유기농 벼농사를 고집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 건강한 먹거리 , 식량주권 , 생태보전 ... 그 답은 여전히 그대로다 . 그렇다면 하는 짓이 달라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

나아가 시간이 흘러도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줄지 않고 있다면 더더욱 기운을 잃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 달포 전에 모판을 앉힌 못자리에는 볏모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 이번 주말 벼농사두레는 다시 모인다 . 못자리에서 논배미로 ! 모내기할 모판을 나르기 위해 . /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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