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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8.07.02

농촌별곡

김매기 미학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8.07.02 15:37 조회 5,45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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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매기 미학 ‘ 전략적 잡초육성지구 ’ 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인 어우 배미 김을 매고 돌아오는 길이다 . 올해 김매기는 이것으로 실상 끝났다 . 나흘 만이고 실제 일한 시간으로 치면 모두 16 시간 .

한 두 시간 남짓 걸릴 안밤실 배미가 남아 있지만 갑자기 억수비가 쏟아지는 통에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 한편으로는 혹시 ‘ 김매기 체험 ’ 에 나설 이가 있을지 몰라 일부러 남겨둔 점도 있긴 하다 .

어제는 “ 김매기 한 번 해보지 않고 어디 가서 벼농사 짓네 하지 마라 ” 는 내 얘기에 넘어간 병수 형님이 두 시간 남짓 함께 김을 맸다 . 4 년 전 귀농해 다섯 마지기 논농사를 짓고 있는데 , 어찌나 물 관리를 잘했는지 논풀이 전혀 올라오지 않아 지금껏 김매기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노라 했다 .

무슨 체스판 말 옮기 듯 감질나게 풀을 뽑다가 자기보다 세 배도 더 빠른 내 손놀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사실 제초제가 눈부시게 (?) 발달한 이 시대에 김매기가 웬말이냐 싶을 것이다 . 하지만 땅을 살리고 , 사람을 살리겠다는 생태 ( 유기 ) 농법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

‘ 화학 ’ 의 탈을 쓴 농약과 비료에서 벗어나고자 애써온 역사가 ‘ 오리 농법 ’ ‘ 논생물다양성 농법 ’ 등에 담겨 있다 . 친환경 제초는 이제 ‘ 우렁이 농법 ’ 으로 일반화되는 추세다 . 원산지가 열대지방인 왕우렁이는 온갖 풀을 잘 뜯어먹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

논물 수위를 높여 왕우렁이가 먹이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 . 그렇지 못하면 논풀이 올라오는 걸 어쩌지 못한다 . 우렁이가 처치하지 못한 풀은 사람 손으로 없애는 수밖에 없다 . 그것이 김매기다 . 김매기는 사실 고단한 전통 논농사의 상징이었다 .

왕우렁이도 없고 물대기도 시원치 않던 시절 , 한여름 뙤약볕 아래 등이 익어가도록 세 차례나 거친 호미질 ( 세벌매기 ) 을 해야 했을 옛 농부의 신음이 귓속을 맴돈다 . 지금은 견줄 수 없을 만큼 나아졌지만 그래도 김매기는 김매기다 .

올해는 나흘 -16 시간 걸렸지만 보름 넘게 걸린 해도 있고 , 단 6 시간 만에 끝난 해도 있다 . 이렇듯 꼼꼼한 시간계산에는 그 고단한 노동을 조금이라도 덜 하고픈 염원이 담겨 있다 . 그러나 김매기는 한편으로 ‘ 황홀경 ’ 을 맛보게 해주기도 한다 .

극과 극이 통한다고 , 극단의 고통에 겨워 찾아오는 경지라고 할까 .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다 . 김을 매는 손놀림에 익숙해진 다음 얘기다 . 논바닥에 들어서면서부터 농부는 물속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

손은 손대로 놀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 삼매경 ’ 에 빠지고 때로는 ‘ 무아지경 ’ 에 이르게 된다 . 몇 번씩 우주를 세웠다가 허물 수 있는 절대사유의 세계 ! 물론 ‘ 공상 ’ 만 들어서는 건 아닐 것이다 .

물속에 갇혀 있다는 고립감은 안정감으로 이어져 생각이 깊고 섬세해진다고 할까 . 나만 해도 몇 해 전에 낸 책 <10 대와 통하는 노동인권 이야기 > 를 8 할은 김매기 하면서 썼다 .

벼농사를 시작한 첫해였는데 , 왕우렁이를 넣기만 하면 지들이 알아서 논풀을 잡는 줄 알고 물관리를 전혀 못했더니 네 마지기 논이 ‘ 피바다 ’ 가 되었더랬다 . 그 풀을 잡겠다고 한 달 보름 , 45 일 동안이나 매달렸다 .

여리디 여리던 풀줄기가 김매기가 끝날 즈음에는 두 손으로 움켜쥐고 줄다리기 하듯 당겨야 뽑아질 만큼 억세져 있었다 . 몸은 고달팠지만 착 가라앉은 사색 환경 덕분에 김매기 현장에서 책 내용을 구상하거나 손보고 , 표현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 머릿속으로 .

그러니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되면 김매기 그 황홀경에 가슴이 설레는 거겠지 . 하여 나는 ‘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 ’ 대신 , 김매기를 겪어보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한 두 시간 거리의 ‘ 잡초구역 ’ 을 마련해 둔 것이다 . /차남호(비봉 염암마을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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