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품앗이칼럼 · 2016.02.11

농촌별곡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6.02.11 15:26 조회 5,340 댓글 0
목록으로 돌아가기

엊그제가 입춘이었고 , 설이 내일 모레다 . 이 겨울의 끝자락 . 농사꾼한테는 참으로 힘든 계절이었다 . 한 동안 ‘ 이상고온 ’ 이 애를 먹이더니 , 얼마 전에는 강추위와 큰 눈이 시설농지를 할퀴고 지나갔더랬다 . 이기적 욕망이 불러들인 기후변화라는 부메랑 .

이젠 하늘을 탓할 염치도 없게 되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봄기운이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음이다 . 하지만 절기가 그러할 뿐 , 농심은 여적 엄동설한이다 . 풀릴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첩첩산중이라 해야겠다 . 농업정책이라는 게 도움이 안 되는 차원을 넘어 아예 농사의 숨통을 끊어놓고 말겠다는 기세다 .

농식품부가 내놓은 것마다 하나같이 농민 죽으라는 ‘ 살농 ’ 정책이기에 하는 얘기다 . 쌀이 넘쳐난다고 아우성이지만 , 정작 쌀 자급률은 90% 도 안 되는 실정이다 . 억지로 들여오는 외국쌀 탓이다 .

그런데 외국쌀을 처치할 궁리는 하지 않고 우리 쌀 생산량을 줄일 궁리 , 다시 말해 자급률 떨어트릴 궁리부터 한다 . 벼 재배면적을 3 만 ha 줄이겠다며 , 지자체에 할당량을 내리먹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 게다가 농업진흥지역 10 만 ha 를 해제하겠다고 한다 .

언 발에 오줌 누기요 , 밑돌 빼서 윗돌 괴는 짓이다 . 미봉책일 뿐 아니라 결국 농민도 죽고 , 소비자도 죽는 길이다 . 가뜩이나 기상이변이 심각한 상황에서 세계적 흉작사태가 빚어지면 어쩌려는지 . ‘ 개방경제체제 ’ 를 돌이키기 힘든 상황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을 모르지 않는다 .

그래도 그렇지 , 모두가 죽은 길을 내놓는 건 너무 무책임하고 뻔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 설령 쌀 ‘ 과잉생산 ’ 이 문제라 하더라도 예컨대 , 유기농 벼농사를 크게 늘리도록 이끄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 이 경우 소출은 줄더라도 질 좋은 쌀을 공급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 매부 좋다 .

당국이 그걸 모르는 게 아닐 게다 . 문제는 철학이요 , 정책기조다 . 정치권력이 저 모양이니 경제권력도 따라서 날뛰는 거 아닌가 . 미곡종합처리장 (RPC) 을 비롯해 도정설비가 가뜩이나 과잉인 지경인데 롯데재벌이 도정업 진출을 선언했다는 소식이다 . 할 말을 잃게 만든다 .

이 땅의 자본주의가 천박하다는 거야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지만 이리 염치가 없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 어디를 둘러 봐도 캄캄절벽 . 한 가지 털어놓자면 , 이 글을 쓸 때마다 “ 이번에는 좀 흐뭇하고 재미있는 얘기를 해야지 ” 다짐한다 .

하지만 막상 떠오르는 일화는 벌써 몇 달 째 이 모양이니 못 할 짓이지 싶어진다 . 나 홀로 넋두리가 아니라 , 어쩌면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형편이 어려운 이 나라 농사꾼들의 하소연이라 해두자 . 더는 기댈 곳이 없으니 각자도생 , 저마다 길을 찾아 종종거린다 .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살아남을 궁리를 한다 . 우리 벼농사모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 이번 공부모임에서는 애써 지은 유기농 먹거리를 어떻게 하면 다 내다팔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았다 . 전국유통망 , 지역유통망 , 온라인장터 , 읍내노점 , 독립매장 ...

숱한 방안이 거론됐고 , 게 중에 함께 해보기로 한 것도 있지만 아직은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다 . 그래서인가 . 얼마 전 세상을 뜬 ‘ 우리시대의 큰 스승 ’ 신영복 선생과 곧장 이어지는 루쉰이 남긴 얘기가 사무치는 요즘이다 . “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

그것은 마치 길과 같은 것이다 . 땅 위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 한 사람이 먼저 가고 ,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