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농사철에 접어들었다 . 천성이 게으르기도 하지만 밭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핑계로 마지막 순간까지 “ 나의 농한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 ” 우겨왔지만 어쩌랴 이젠 꼼짝없는 농사철인 것을 . 지난 월요일 , 석 달을 이어온 고산권벼농사두레 < 농한기강좌 > 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농한기가 끝났다는 얘기다 . 그 마지막 강연은 ‘ 퍼머컬처 텃밭디자인 ’( 강사 임경수 ) 이 장식했다 . 밭농사는 요즘 씨앗을 붓고 온실에서 모종 기르는 단계다 . 시절이 딱 들어맞아선지 퍼머컬처 강연에는 청중이 대거 몰려 귀를 쫑긋 세웠다 .
특히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농장구획 , 화석연료를 멀리하고 에너지를 아끼는 경작원리 , 자연과 어우러지는 생태가치라는 이날 강연주제는 전체 강좌를 마무리하는 메시지로 안성맞춤이었다 . 여기에다 그 결실로 거둬들이는 건강한 먹거리는 생태적 삶의 완성이라 하겠다 .
나 또한 그런 텃밭농사를 꿈꾼다 . 비록 집짓고 남은 코딱지만한 밭이지만 이미 그런 원리에 따라 땅을 고르고 자리를 나눠놓았다 . 이제 씨앗을 묻고 모종을 옮겨 심을 차례다 . 작물만이 아니고 사이사이에 꽃과 나무를 심을 생각이다 . 어느덧 벼농사도 코앞이다 .
엊그제는 볍씨를 넣는 데 쓸 상토를 실어왔다 . 동네 어귀에 62 포를 가져다놓았다는 기별을 받고 1 톤 트럭에 실었더니 짐칸이 차고 넘친다 . 집으로 옮겨와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았다 . 땀이 맺히고 온몸이 뻐근해온다 . 겨우내 축 늘어져 있던 근육에 갑자기 힘이 들어가니 그럴 만도 하겠지 .
저도 모르게 씨나락 담그는 날짜를 헤아려본다 . 그러고 보니 혼자가 아니다 . 벼농사두레와 함께다 . 때 맞춰 내일모레 정기 회원총회를 연다 .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가늠해보는 자리다 . 그러다보니 좀 의례적인 게 보통이다 .
우리 또한 활동보고 , 회계보고와 함께 실정에 맞지 않는 회칙조항 몇 개 손보는 정도로 설정하고 있었다 . 그런데 출석점검을 했더니 8 할 가까이 참석의사를 밝히는 거다 . 선거를 치르거나 날카로운 쟁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뜻밖이다 .
실제 출석으로 이어질 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더 큰 공간으로 급히 회의장을 옮기고 준비상황을 재검검하는 수선을 피워야 했다 . 이런 장면은 또 있었다 . 일 전에 ‘ 신규경작 설명회 ’ 라는 걸 열었다 . 우리 벼농사두레와 더불어 새로 유기농 벼농사에 도전할 뜻을 지닌 이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
미리 파악한 정보로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의 참석자가 예상됐지만 실제 참석자는 두 손이 모자랐다 . 자리도 옹색하고 , 준비한 기자재도 시답잖아서 진행에 애를 먹어야 했다 . 나아가 손수 벼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참석자들의 의지를 모두 받아 안으려면 준비된 농지가 모자란 것도 문제다 .
스스로 벌인 일이지만 알다가도 모를 때가 있다 . 흔히 경제영역으로 간주되는 벼농사 . 이 동네에서는 어느새 경제를 넘어 ‘ 가치 있는 삶 ’ 을 체현하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현상도 그 하나다 . 그것은 약동하는 봄기운만큼이나 강렬하게 느껴진다 .
나로서는 이 넘치는 기운이 벼농사두레 활동의 결실이자 뜨거운 한 해를 예고하는 조짐이기를 바란다 . ‘ 바깥의 힘 ’ 에 기대는 대신 스스로 부조하고 자급 , 자치하는 것이 좋은 길임을 예증하고 싶다 . 그렇게 핀 꽃이 더 아름답지 않겠나 . /차남호(비봉 염암마을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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