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처럼 아름다운 ‘ 비봉면 수선리 ’ 비봉면은 영어 Y 자 지형으로 ㈀ 지역 ( 봉산 · 소농 · 내월리 ), ㈁ 지역 ( 대치리 ), ㈂ 지역 ( 백도 • 이전 • 수선리 ) 7 개리로 구성되었다 . 수선리는 지명대로 물이 좋다 .
산골이 많은데다 저수지가 있으며 , 이 저수지는 제 3 ∼ 4 대 이존화 민의원 주선으로 막아 작인들이 공적비를 세웠다 . 지명 문자 ‘ 닦을 수 ( 修 )’, ‘ 착할 선 ( 善 )’, 혹은 ‘ 목숨 수 ( 壽 )’ ‘ 착할 선 ( 善 )’ 도 더러 있다 .
주목할 부락은 평지 ( 平地 ) 마을이다 . 밀양박씨 집성촌으로 단합이 잘되고 애정이 있어 ‘ 박태근 ( 朴泰根 ) 옹의 공적비를 세웠다 . 박 옹은 경기도 파주에서 성신문화사 ( 출판사 ) 대표로 전국 여러 대학교에 많은 책을 주어 그 금액이 수억 원 .
청소년 시절 친구 집에서 밥 얻어먹고 잠잔 일을 잊을 수 없다며 , 그 손자 장학금을 뭉떵 내놓았다 . 이런 처신으로 서울에 친지 많으나 70 대 중반 중대결심을 했다 . ‘ 내가 누구냐 ?
고향 비봉면 수선리로 돌아가야 한다 .’ 며 출판사를 정리함과 동시에 재산 몫 따라 정리하고 ‘ 평지마을 ’ 로 돌아왔다 . 경로당을 갖고 싶어 하는 주민을 위해 땅을 선뜻 내놓아 공적비가 서게 되었다 . 1932 년 4 월 2 일 산기가 들어 아이고 배야 !
할 때 ‘ 불이야 !’ 마을이 전소 놀란 부인은 개울 건너 외딴집에 가 해산했는데 이 남아가 바로 박태근 이다 . 태근 님 아버지는 윤석 ( 潤錫 :1888 년생 ), 한학자 규진 ( 奎鎭 :1863 년생 ) 할아버지는 학동들을 가르쳐 1 년에 월량 ( 月糧 : 수업료 ) 수십 섬을 받았다 .
박태근 씨의 노년을 귀소 ( 歸巢 ) 심리 ( 心理 ) 로 본다 . 박태근 옹 내외는 옛 절터 사러온 불자에게 싸게 팔았다 .
원수선은 문화류씨 집성촌으로 입향조는 류취정 ( 柳就正 ) 이며 , 후손 중 류중렬 중학교 교장 아버님은 소나무로만 집을 지어 당호를 ‘ 전송가 ( 全松家 )’ 라 했고 , 큰 며느리 정씨는 남편이 죽자 곧 따라 자절한 열녀이었다 . 류지탁은 전북도교육청 교육국장을 지냈다 .
박두식 ( 朴斗植 ) 비봉면장은 2019 년 고향에서 정년퇴직 공직을 마쳤다 . 비닐하우스는 농촌마다 비슷한 농법이기에 긴 설명을 주린다 . 수선리 뒷산이 화산 ( 花山 ) 인데 1914 년 새 이름을 지으며 이 산을 인용 ( 引用 ) ‘ 화산면 ( 華山面 )’ 면이라 했고 ‘ 성산 ’ 대접을 한다 .
수선리에 해방 직전부터 아동교육기관이 있었고 , 한 때 초등학교로 승격 탄탄하더니만 주민이 줄어 분교로 내려왔다가 이 마저 지켜내지 못하고 폐교돼 애들은 고산초등학교를 다닌다 . 이런 사정에 따라 여기 주민들은 행정구역 화산이나 고산면 편입을 마다하지 않아 언젠가는 그럴 가능성도 높다 .
‘ 가루개 ’ 는 순 우리말인데 한자로는 ‘ 노포 ( 蘆浦 )’ 라 적는다 . 반곡사는 담양국씨 선대 어른을 모시는 사당으로 봄에 유림들이 모여 제사한다 . 수선하지 않은 마음이다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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