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 삼례 ’ 를 예향 ( 禮鄕 ) 으로 삼례 사정은 주민과 군청 관광체육과 , 완주군수가 잘 안다 . 요사이 ‘3·1 운동 100 주년 기념행사 ’ 가 넘쳐나는 가운데 고개를 들어 고향 얘기도 더듬어보자 .
『 고려사절요 ( 서기 1011 년 현종 2) 』 에 ' 삼례 ( 역 )' 가 나오므로 오래된 이름이며 , 오백조면 → 창덕면에서 → ‘ 삼례면 ’ 에 이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
해방 당시까지 부자 [ 지주 ] 가 많아 ▵ “ 소작인이 도조 섬을 지고 삼례에 들어서며 ‘ 절 한 번 ’, 지주 만나서 ‘ 다시 한 번 ’, 작별 인사차 ‘ 세 번째 절 ’ 을 하니 ‘ 삼례 ’ 란다 ” 는 소리에 ‘ 반론 ’ 이 없다 .
▵ 지주 행사에 나가지 않으면 찍히거나 괘씸죄 (?) 에 걸리니 꼭 ‘ 참례 ( 參禮 )’ 하고 세 번 예를 갖춰야 한다는 ‘ 참례론 ( 參禮論 )’ 역시 너그럽게 받아드린다 .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자꾸 만드는 법 . 왜 삼례인가 ? ▵ 한때 ‘ 우도 ’·‘ 좌도 ’ 하던 전라도 시절이 있었다 .
곡성 , 남원 방면은 ‘ 전라좌도 ’, 나주 목포 쪽은 ‘ 전라우도 ’ 인데 각도 행객이 서울에 가는 경우 좌도 사람은 ‘ 홈실 박씨 ’ 집안에서 , 우도 양반은 ‘ 서도 장씨 ’ 마을에서 자고 다녔단다 . 우도 · 좌도 양반들이 만나는 다음 자리가 바로 < 삼례역 >.
‘ 좌도 ’+‘ 우도 ’+‘ 삼례 ’ 세 골 ‘ 예절 ’ 이 어우러지는 곳이라 ‘ 삼례 ( 參禮 )’ 라는 지명론 역시 곱게 받아드리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 호남암행어사 복명서계 ( 湖南暗行御史復命書啓 ) 」 에 이렇다 .
삼례폐수종말처리장 “ 삼례역은 호남지방 첫 번째 목구멍 ( 咽喉 : 인후 ) 같은 곳이어서 대소 행객이 본도에 들어 갈 땐 이 역을 지나고 … ” 이랬다 . ▵ 삼례는 물 , 길 ,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삼례 !
이처럼 좋은 곳이니 완주군은 삼례를 ‘ 예향 ( 禮鄕 )’ 으로 키워야하며 , 전라북도는 ‘ 삼례 ’ 명성을 되 일으켜야한다 . 박한영 스님을 잊어서는 아니 되며 , 신창주재소 무기고를 털은 김춘배 ( 金春培 ) 를 모르쇠 해선 삼례의 수치이다 .
제 1 공화국 전 농림부장관 윤건중 ( 尹建重 ) 을 기억해야 하고 ‘ 삼례 ( 三禮 ) 갖춘 인재 ’ 를 길러야 하며 과객들이 어느 부잣집에 들렸나 후한 인심을 찾아내야 하는데 만일 이런 부자가 없었다면 인색했다는 이야기다 .
자랑거리를 찾아내는 가운데 비비정 ( 飛飛亭 ) 얘기는 그만 접어도 된다 . 부자나 식자층이 먹고 마시며 놀던 자리 그 이상 다른 의미가 없으니 해방 직후 당찼던 일부 청년들의 활동을 재조명이나 해야 한다 .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 삼례 백비 ( 白碑 ) 이야기 ’ 는 서승 ( 전주 ) 온다라 역사문화연구원장을 모시고 들으면 이게 학습이다 . 윗삼례 ‘ 벌샘 ’ 은 무슨 일이 있어도 메우거나 더럽혀선 아니 된다 . 삼례 원이름이 ‘ 샘리 ?’ ‘ 샘 ’ 에서 비롯했었을 수도 있다 .
완주군 폐수종말처리장은 187 억원이 들었고 , 하루에 1 만 8 천 ㎥ 더러운 물을 처리한다니 눈여겨봐야한다 . 삼례에서 구정물 먹을 사람이 나오면 아니 된다 . 군민은 < 문화예술촌 > 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야 한다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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