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면 ( 所陽面 ) 황운리 ( 黃雲里 ) 황운리는 완주군 소양면 자치센터 소재지이다 . 전주시내에서 20 리 . 전에는 5 일장 (3·8) 이 섰다 . 황은리는 우선 지나는 사람이 많았다 .
△ 진안 - 장수 - 무주 - 영남 가는 사람 △ 송광사 위봉사를 찾아드는 보살과 탁발승 △ 성묘 나선 전주최씨 , 전주유씨 , 전주이씨 △ 위봉산성 역사 ( 役事 ) 에 동원된 백성들 △ 동학혁명 당시 이 태조 어진이 관감재 ( 曠感齋 ) 서 자고 여기를 지나 위봉산성 행궁에 갔다 .
△ 성경 보따리 짊어지고 곰티재를 넘나드는 선교사 △ 난리 피해 숨어드는 도망자 △ 땔나무 하러 새벽에 나선 나무꾼 [ 초부 : 樵夫 ] 들 … 하여간 독특한 지역이다 .
△ 특히 ‘ 임진 정유왜란 때 웅치 ( 熊峙 ) 를 넘은 왜군이 전주성을 향해 구름처럼 밀려들자 우리 군사와 맞붙어 싸울 당시 말굽에서 피어오른 누런 먼지가 마치 구름 같았다 ’ 해서 황운리 ( 黃雲里 ) 이란다 .
정재윤 소양면장이 면사무소를 새로 지으며 2017 년 8 월 13 일 황운로에서 만나자마자 “ 다 된 정자 이름 ‘ 황운정 ( 黃雲亭 )’ 어때요 ?” 이 물음에 “ 글자야 훌륭하지만 …
” 위의 얘기를 줄여 하니 “ 그럼 다른 좋은 이름 없어요 ?” 되묻기에 “‘ 소양정 ( 所陽亭 )’ 괜찮지요 ” 정 면장은 별말 없이 받아드려 명필 현액 ( 懸額 ) 을 드높이 걸었다 . 정재윤 면장은 왜 ‘ 소양정 ’ 을 쉬 받아드렸을까 ? 예나 지금이나 ‘ 소양 ( 所陽 )’ 은 매력이 넘친다 .
조선시대 전주부에서 소양을 보면 ‘ 해 [ 태양 : 太陽 ] 가 돋는 장소 ( 場所 )’ 곧 동쪽이다 . 우리 민족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하늘 [ 천 : 天 ] 과 해 [ 태양 : 太陽 ] 을 존엄하게 여겼다 .
누구나 만일 하늘 ( 천주 , 하나님 , 하느님 , 여호와 ) 이나 태양신을 노엽게 하면 천벌 ( 天罰 ) 을 받는다는 생각이 뼈 속까지 새겨져 있다 . 전주 감영에서 볼 때 소양은 ‘ 하느님 ’ 과 ‘ 태양 ’ 마을로 뵈는 것이었다 . 정재윤 면장은 이 말이 와 닿은 게다 .
아비규환 피비린내는 전장에서 피어오르는 ‘ 누런 먼지 구름 ’ 보다야 ‘ 태양 ’ 이 훨씬 고상하므로 수장으로서 밝은 쪽을 얼른 선택했고 ‘ 소양정 ’ 을 수용한 면민도 위대하다 . 나그네는 소양교 옆 주덕재 ( 周德齋 ) 표석을 보고 현장에 갈만하며 , 대승리 만육 최양 묘소도 가깝다 .
초등학교 뒤편 거사비 ( 去事碑 , 去思碑 ) 는 면사무소 너른 마당으로 와야 한다 . 황운리에 익산 ↔ 장수고속도로 IC 가 있어 진주 점심 나들이를 하는 사람이 있단다 . 중학교 , 농협 , 우체국 , 보건진료소가 있고 , 시내버스 ‘8 ○○ ’ 번은 황운리를 거친다 .
이런 사유로 배산임수 ( 背山臨水 ) 높은 자리까지 깎아 집을 짓는다 . 소양교회 오래 됐고 여기 시무하던 이 ○○ 목사 쌀을 갖다 쓰고 갚지 않은 신도 아무개는 어디서 뭘 하며 어떻게 사는지 ! 이런 사람이 마을 인심을 사납게 했다 . ‘ 소양면 개청 100 주년 기념비 ’ 는 오래 간다 .
누구나 좋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 . 일기예보에서 미세 먼지 이야기를 하는데 임란 때의 ‘ 황운 ( 黃雲 )’ 이나 마찬가지이다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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