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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7.05.01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35

비봉면 수선리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7.05.01 10:59 조회 5,37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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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리 사람 이야기 많다 비봉면 수선리를 한자로 ‘水仙里’ ‘壽仙里’ ‘修善里’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원래 한문은 자기 아는 대로 적는 경우가 있어 틀렸다 맞다 따질 필요가 없다. 이 고장은 유독 사람 이야기가 많다. 서기2017년 4월 2일 평지마을에 살아있는 ‘박태근(朴泰根:86)공적비’를 세웠다.

▴초년 고생 ▴중년 활약 ▴노년의 베풂을 새겼는데 ‘나도 이랬다’할 사람 더러 있을 수 있으나 하여간 잘한 일이다. 그의 생애 ‘고(苦)-열(熱)-시(施)’도 중요하지만 이를 지나치지 않고 돌에 새겨 기념하자는 박전근 외 추진위원들 대단해 치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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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담은 비석 얘기 들리는데(生涯事績立碑聞)/ 평지말 박씨네들 드문 잔치로다(平地朴門稀貴宴)/ 봄꽃새잎이 ‘비봉’을 송축하니(春花新葉‘飛鳳’頌)/전주 먼데 사람 소리 높여 존경하네(完山遠地高聲尊)” 이런 축시도 배달되었다.

이전리 출신 이존화 3·4대 민의원을 하는 동안 저수지를 만들자 주민들이 둑 아래에 ‘공적비’를 세웠으며, 그 물길이 와룡리까지 미치자 고인을 두고두고 칭송한다.

종리 신암 김정만 선생(1880∼1955)의 『신암유고(愼菴遺稿)』에 ‘단인황씨전(端人黃氏傳)’이 있고 황씨는 익산 어곶 여인으로 오늘날 고산 국씨를 대성케 하였다.

‘유종렬처 진주정씨뢰(柳鍾烈妻晉州鄭氏誄)’ 여덟 줄이 같은 책에 있으며, 산정마을 ‘열녀 국치권처 풍천임씨지려(烈女 鞠致權妻 豊川任氏之閭)’와 ‘담양국공처 효열부 제주고씨지려(潭陽鞠公殷煥之妻孝烈婦濟州高氏之閭)’ 역시 애절한 여인의 사연이 서려있다.

수선리는 곤동-송수-평지-산정-부수-원수선 6개 부락으로 나뉘었고 국중〇은 젊은 시절 6·25 전쟁을 당해 부역했다는 굴레로 평생 부자유스럽게 살았던 피해자이었다.

홍인대학교를 졸업한 문화유씨 유중렬 선생은 고산중, 번암중, 순창여중에서 근무했으며 완주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후 원수선에서 생을 마쳤다. 마을 좋은 인심이 미국과 인도네시이까지 소문났다. 아들 집에 가는 경우 두고 간 개를 이웃들이 먹여살렸다.

유 선생 행랑채를 ‘전송가(全松家)’라하며 오직 소나무로만 지은 집이라는 뜻이다. 전송가 각 방마다 침대를 놓고 ‘며느리방’이라 설명했다. 평지마을에 옛 절터가 있다.

어느날 스님이 찾아와 땅 1,650㎡(500평)를 사정하여 1천 500만원을 부르자 곁에 있던 부인 왈 “절 지을 스님이니 500만원을 깎아줍시다.” 처를 따랐다. 스님의 동행자가 ‘남도 500만원을 깎아 주는데 나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500만원을 내놓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신도는 ‘수선리’ 이름이 좋다며 500만원 기부를 자청한다. 한 불자는 그 날 못 따라간 후회금(後悔金)이라며 500만원을 시주하니 스님 땅은 땅대로 생기고 500만원이 남았단다. 유지탁 전 전북교육청교육국장 이고장 출신이요, 국중금·임종태도 교육계에 종사했다.

뒷산 이름이 ‘화산(花山)’. 운서면 사람이 좋아해 1914년 고산군과 전주부가 합칠 당시 새 이름 ‘화산면(華山面)’이라 했는데 여기 화산(華山)은 ‘화산(花山)’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반곡사는 고산 4대서원 중 하나로 여기 모신 인물을 중심으로 고산학(高山學)을 열어나가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주는 사회가 바른 사회이다. 그러나 경매에 붙여지는 땅이 있다. 빚은 멧돼지 보다 더 무섭다.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현장 사진

비봉면 수선리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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